사실 우리에게 고양이는 강아지에 비해 덜 친숙한 동물입니다. 은혜를 갚는 강아지와 견줘 주인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인식도 강하죠. 이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애교를 무기로 주인과 교감하는 강아지에 비해 고양이를 꺼리는 경우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괴기 영화의 불길한 장면에서 고양이가 종종 등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고양이도 강아지 못지않은 충성심을 발휘하며 은혜를 갚은 사례가 있습니다. 노숙자를 살린 고양이의 이야기인데요.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관련 책이 나와 있지만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고양이 ‘밥(Bob)’과 노숙자 가수 제임스 보웬(35)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죠.
제임스가 노숙자가 된 사연은 가슴 아픈 가족사에서 시작됩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 갈라 선 어머니를 따라 호주로 이주했다가 18세가 되던 해 혈혈단신 록 스타를 꿈꾸며 런던으로 넘어왔습니다. 록 스타의 꿈은 멀었습니다. 친구 집을 전전하던 그는 마약에 빠졌고 노숙자 신세가 됐습니다. 다행히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공영아파트에 머물게 됐답니다.
제임스는 2007년 3월 고양이 밥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발이 부어오른 채 배를 쫄쫄 굶은 듯 아파트 현관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밥을 제임스가 치료를 해주고 먹이도 줬다고 하네요. 제임스는 자신이 가진 돈 22파운드를 치료비로 탈탈 털어 썼고 밥은 다행히 2주만에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제임스는 밥을 키울 수 없었습니다. 제 앞가림하기 바빴기 때문이죠. 결국 제임스는 집에서 수 ㎞ 떨어진 공원에 울면서 밥을 놔준 뒤 평소처럼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는군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밥이 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때 제임스는 밥을 기르기로 결심했다는군요.
이후부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변변찮던 거리 공연이 점차 성황을 이루었답니다. 그동안 제임스의 공연에 시큰둥했던 시민들은 귀여운 밥을 보며 발걸음을 멈췄고 제임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수입도 늘었습니다. 밥이 제임스의 곁을 지킨 첫날 수입이 평소의 3배나 됐다고 해요.
제임스와 밥은 단짝이 됐습니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다네요. 둘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고 제임스는 나름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고양이 밥은 놀랄 만큼 낯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임스가 공연을 하고 있으면 가만히 지키고 앉아 있다가 돈을 내는 손님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하이파이브를 해준다네요. 성난 개에게 쫓긴 적도 있지만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는군요.
하지만 제임스와 밥에게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순수함을 의심받아 길거리 공연을 못하게 될 뻔도 했고, 수입이 많아지면서 제임스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다행히 제임스가 마약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둘의 우정에 반한 한 출판사는 2012년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이라는 이름의 책을 펴냈습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제임스는 유명인사가 돼 TV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고, 사람들은 밥을 위해 목도리 선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임스는 책 인세 수입을 대부분 버려진 고양이과 강아지를 위한 기금에 기부했다는군요.
밥과 제임스가 하이파이브 하는 사진을 보노라니,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동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나는군요. 둘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저도 런던에서 밥과 하이파이브 한 번 해보고 싶네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