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끝났지만 세계 축구는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올해 브라질의 밤하늘을 빛낸 스타플레이어들은 2018 러시아월드컵이 개막할 때까지 4년간 판세와 시장을 재편할 겁니다. 그 시작은 지난 2일 개장한 여름 이적시장에 있습니다.
3대 빅리그 이적료, 우리나라 1년 외교 예산에 육박
여름 이적시장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스포츠의 최대 ‘빅 마켓’입니다. 지난해 여름의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1조1700억원, 이탈리아 세리에A가 6300억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6200억원의 이적료를 시장에 풀었습니다.
이들 3개국 리그의 이적료 총액은 올해 우리나라의 외교 분야 예산(2조8370억원)과 맞먹습니다. 물론 선수의 급여를 제외한 금액이죠. 이적료와 급여는 별도의 협상 항목입니다. 급여까지 포함하면 여름 이적시장의 자본 규모가 천문학적인 액수로 증가할 것입니다.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포르투갈)의 경우를 볼까요. 레알 마드리드는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호날두를 영입하고 1419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죠. 레알 마드리드는 당시 호날두의 주급을 3억5000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주급은 현재 5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호날두는 서울 강남에서 10억원짜리 34평형 아파트를 2주에 한 번씩 살 수 있습니다.
갤럭시S5 22만대 살 수 있는 수아레스의 몸값
올 여름에는 더 어마어마한 자본이 이적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전망입니다. 이적시장이 지구촌 최고의 축구축제인 월드컵 기간 중에 열렸기 때문이죠. 다수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이미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핵이빨’ 루이스 수아레스(27·우루과이)는 리버풀에서 FC바르셀로나로 이적했습니다. 수아레스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31골을 넣은 득점왕입니다. 월드컵에서도 2골을 넣었죠. 바르셀로나가 수아레스에게 책정한 이적료는 1330억원입니다.
수아레스의 몸값으로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하이브리드 2014년형을 최고가(2990만원) 기준으로 4448대, 삼성전자의 최신형 스마트폰인 갤럭시S5를 최저가(59만6800원) 기준으로 22만2855대까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다골인 6골로 골든부트를 수상한 하메스 로드리게스(23·콜롬비아)도 ‘빅딜’의 중심에 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구두 계약을 마쳤습니다. 또 하나의 초대형 계약이 임박한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적료로 1053억원을 준비했지만 로드리게스의 현 소속팀인 AS 모나코는 1123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이적을 불허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 강남역의 명소인 N제과점 빌딩 가격은 1050억원으로 알려졌습니다. 강남의 유명 빌딩 한 채가 로드리게스의 몸값보다 싼 셈이죠.
수아레스와 로드리게스는 올 여름 이적시장을 완성하는 퍼즐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이었습니다. 이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명문 구단의 다음 시즌 전력도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월드컵 챔피언 독일의 토니 크로스(24)를 영입했습니다. 크로스를 빼앗긴 바이에른 뮌헨은 월드컵의 스타골키퍼 케일러 나바스(28·코스타리카)를 골문 앞으로 불러들였죠. 아스날은 알렉시스 산체스(26·칠레), 첼시는 디에고 코스타(26·스페인)로 최전방을 무장했습니다.
박주영, 소속팀 못 찾으면 병역 논란 재연할수도
우리나라 선수의 경우 가장 큰 관심 대상은 박주영(29)입니다. 월드컵 기간 중 아스날로부터 계약만료 통보를 받고 무직자 신세로 전락한 박주영은 터키 부르사 스포르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부르사 스포르의 사령탑은 과거 프로축구 K리그 FC 서울에서 박주영을 가르쳤던 세뇰 귀네스(62) 감독입니다. 이적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박주영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병역 문제까지 고려하면 어느 팀의 제안이든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주영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예술·체육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병무청장이 지정한 분야에서 34개월간 활동하면 됩니다.
지정 분야는 축구겠죠. 소속팀을 찾아 뛰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공백이 길어지면 병무청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병역 문제가 꼬일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조기축구회라도 뛰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완지시티의 기성용(25)과 레버쿠젠의 손흥민(22), 잉글랜드 2부 리그 볼튼 원더러스의 이청용(26)도 이적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일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인 기성용의 경우 같은 리그의 애스턴 빌라로 이동할 길이 열렸습니다. 애스턴 빌라가 기성용을 영입하기 위해 106억원을 준비했다는 구체적인 보도도 나왔죠. 이 정도면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없습니다.
손흥민은 수아레스의 이적으로 공백이 생긴 리버풀이 영입할 유망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청용은 같은 리그의 카디프시티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청용이 이적하면 김보경(25)과 한솥밥을 먹게 될 겁니다.
키워드
◇이적료=구단이 선수를 영입하면서 원 소속구단에 지불하는 금액입니다. 구단 간의 거래일 뿐 선수의 몫은 아니죠. 다만 계약조건에 따라 선수가 이적료의 일부나 수수료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적료를 ‘몸값’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시장이 선수의 가치를 책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주급=선수가 구단으로부터 받는 급여입니다. 출전·승리 수당은 계약조건에 따라 별도로 책정됩니다. 일주일에 한 경기씩 열리는 리그 일정상 주급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한 시즌으로 환산하면 연봉이 됩니다.
◇바이아웃조항=구단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원 소속구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선수와 협상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입니다. 금액은 선수와 원 소속구단이 미리 책정합니다. 보편적으로는 선수에게 유리한 조항입니다. 다만 미리 책정한 금액이 지나치게 높아 이적 기회를 놓치는 선수도 있습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