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발칸반도의 ‘화약고’가 또 폭발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라운드에서입니다. 오랜 갈등을 빚은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가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예선에서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세르비아·알바니아의 선수와 관중들은 15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파르티잔 경기장에서 열린 유로 2016 예선 조별리그 I조 3차전에서 득점 없이 맞선 전반 41분부터 그라운드에서 뒤엉켜 싸웠습니다. 그냥 난투극이 아니었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난투극이었죠.
알바니아 국기를 매단 무인기가 출현하고, 세르비아 선수가 그 깃발을 붙잡아 끌어내리고, 알바니아 선수가 깃발을 빼앗기 위해 세르비아 선수들에게 달려들어 싸우고, 흥분한 양국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고, 이 과정에서 한 관중이 선수를 의자로 때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투극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데…”
무인기에 매달린 알바니아 깃발을 끌어내린 세르비아 선수
“이봐! 우리 깃발이라고. 이리 내놔.”
“이 깃발과 무인기는 내가 접수한다. 코소보 만세!”
“깃발 도둑을 잡아!” 축구에서 ‘런닝맨’으로 바뀐 경기
“잘 놀았지? 이제 우리와 함께 가자”… 기다리는 경찰
“뭘 잘했다고 박수를 쳐?”
세르비아와 알바니아는 오랜 세월 동안 정치·민족·종교적 갈등을 빚었습니다. 극단적 대립은 1998년 코소보 사태부터였죠. 코소보는 유고연방의 자치주였지만 주민의 80%는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였습니다. 알바니아계 반군은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했고, 세르비아 경찰은 반군 소탕과 함께 잔혹한 인종청소를 단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는 유엔의 제지를 받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두 달 넘는 공습을 받았습니다. 코소보사태는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습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는 2010년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앙금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세르비아의 한 공동묘지에서 발견돼 지난 14일 조국으로 돌아간
코소보사태 희생자 시신의 관에 알바니아 국기가 덮였다.
그라운드 난투극은 역사적 배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프랑스 니옹에서 열린 유로 2016 예선 조 추첨식에서 I조로 묶인 세르비아와 알바니아를 놓고 유럽 언론과 여론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죠.
난투극은 양국의 새로운 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국기를 무인기에 매달아 띄운 용의자는 알바니아 총리의 동생인 올시 라마로 알려졌습니다. 올시는 현장에서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알바니아 총리인 에디 라마는 난투극에 가담한 자국 선수들을 꾸짖기는커녕 SNS를 통해 격려했죠. 양국 네티즌은 SNS에서 자국의 영문명을 해시태그(트위터 공통 주제어)로 달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반 41분부터 주심이 중단한 경기는 속개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번 경기를 폐기하고 책임자를 징계할 계획입니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재경기가 없는 완전 취소일 경우 세르비아와 알바니아는 유로 2016 본선 진출을 낙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유로 2016 본선 진출권보다 양국의 화해가 우선입니다.
사진=AFP BBNews / News1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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