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 아쉬웠지만 컴백만으로도 괜찮아

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 아쉬웠지만 컴백만으로도 괜찮아

기사승인 2014-10-19 17:06:55

솔직히 고백하겠다. 기자는 서태지의 20년차 팬이다. 오빠의 ‘아이들’이었고 한때는 ‘마누라’였고 종국에는 사람도 아닌 ‘버팔로’로 살았다.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태지의 화’를 보러 갔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고, 첫 ETP는 숫제 학교를 결석하고 밤새 줄을 섰다(그때는 스탠딩이 선착순 입장이었다. 세상에!). 당연히 ‘오빠’의 컴백을 5년 만에 맞은 소회는 남달랐다. 기괴할 정도로 늙지 않은 모습과 여전히 팬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집 나간 팬도 돌아오게 만들겠다 싶었다. 신곡들은 기대감을 높였고, 오리지널 버전의 ‘너에게’도 좋았다. 동심으로 가득한 세트도, 디테일한 사운드 디자인도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도 존재했다.

1. 1시간의 지각, 사과는 없었다

무엇을 막론하고 지각은 사과해야 한다. 당초 오후 6시에 시작할 예정이던 서태지 단독 콘서트 ‘크리스말로윈’은 1시간 늦은 오후 7시에 시작했다. 6시30분 Mnet ‘댄싱9’ 우승팀인 블루 아이의 공연이 시작됐을 때 모두 ‘이제 시작하는구나’하고 기대했지만 블루 아이의 공연이 끝난 뒤 전광판에는 “‘크리스말로윈’은 7시에 시작한다”는 메시지였다. 이제 30대 후반인 서태지 팬들에게 10월의 추위는 가혹하다.

7시에 등장한 서태지의 입에서는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었다. 다사다난했던 서태지의 사생활과 숱한 비난을 견뎌냈던 끈끈한 팬덤의 5년 만의 조우다. 당연히 서태지 본인이 느끼는 감동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사과는 해야 한다.

2. 아이유와의 콜라보, 아쉽지만 안 어울려

이날 서태지는 아이유와 함께 ‘소격동’을 라이브로 불렀다. 아이유의 1절은 차분했지만, 두 사람의 조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뛰어난 가창력이 무기인 아이유와, “내 목소리는 악기 소리와도 같아서 돋보이기보다는 연주음 같이 생각해 달라”던 서태지의 하모니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세피아 톤의 전광판 중계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소격동’ 세트는 아기자기하면서도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멀리서 보는 팬들은 전광판 속의 어둑어둑한 아이유와 서태지의 모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3. 5년의 갈증을 채우기엔 부족했던 1시간40분

최근 가수들의 콘서트는 보통 2시간 이상이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는 3시간도 간혹 있다. 세트리스트는 천차만별이지만 협업과 게스트 무대 등으로 노래는 20곡이 넘어가는 것이 기본이다. 5년의 기다림으로 갈증이 컸던 팬들에게 1시간40분과 18곡의 세트리스트는 많이 아쉽다. 신곡과 과거의 히트곡이 버무려져 높은 퀄리티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팬의 입장에서는 서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말로윈’은 꽤 괜찮은 콘서트였다. 9집 활동의 서막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우리 함께 저물어간다”던 서태지의 말에서는 팬들을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 인생의 동반자를 향한 정이 엿보였다. 어쨌든,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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