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49) 감독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이번 영화 ‘오늘의 연애’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박 감독이 처음 선보인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들보다 확실히 무게감은 떨어진다. 5년여의 공백 이후 내놓은 첫 작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박 감독에게 이 질문을 던졌더니 예상외의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하고 싶었어요.”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던 장르라는 것이다. 박 감독은 “저도 보기와는 다르게 장난기도 많고 그렇다”며 미소를 보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좀 더 깊은 이유도 있었다. 지상파 교양 PD로 12년 방송생활을 하다 영화감독으로 전향한 박 감독은 “그동안 쌓인 어떤 삶의 무게가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벗어나고 싶었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가볍고, 편하고, 자유로운 것들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오늘의 연애’는 18년간 남매 이상의 편안한 친구 사이로 지내던 준수(이승기)와 현우(문채원)가 서로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껴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이 주된 내용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남녀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에 대해 다뤘다.
앞서 박 감독이 ‘죽어도 좋아’(2002) ‘너는 내 운명’(2005) ‘내 사랑 내 곁에’(2009) 등서 선보인 묵직한 사랑 얘기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비교적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요즘 시대, 오늘날의 연애 행태가 바뀐 거지 그 본질이 바뀌진 않은 것 같다”면서 “사람을 보고 설레고 좋아하는 감정들이 절대로 가벼운 감정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세태가 좀 그렇게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영화도 그런 것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중요한 건 ‘조금 더 깊이 있게 부딪히면서 깨지면서 연애하자’는 메시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요즘, 오늘날의 연애가 담겨있는 거죠. 그래서 제목도 ‘오늘의 연애’이고요.”
박진표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재미와 판타지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박 감독은 ‘오늘의 연애’를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 좋은 팝콘 무비라고 정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작품성을 논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냥 편안하게 보면 재밌잖아요.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저런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나도 저런 고백 받고 싶다’ ‘저런 연애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면 좋은 거죠. 그러면 이 영화는 성공한 거지. 그렇지 않나요? 판타지를 주는 것. 그게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특성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대표작 ‘너는 내 운명’과 비교하기도 했다. 평범한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과 다방 아가씨 은하(전도연)의 사랑을 그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작품이다. 다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인 ‘너는 내 운명’도 사실은 판타지가 아니냐는 게 박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는 “사실 석중이 같은 남자가 현실에 어디 있느냐”면서 “멜로 상업영화는 결국 관객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것”이라는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연애’를 2010년대 판 ‘너는 내 운명2’”라며 “너무 극단적이지 않고 절절하지 않아서 그렇지, 운명 같은 상대를 끝까지 지켜 고백하고 쟁취한다는 점에선 요즘 세대의 ‘너는 내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박 감독 개인이 느낀 색다른 기쁨도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들던 그가 오랜만에 마음 편히 촬영을 했다는 것이었다. 부담감이나 의무감이 덜 하다 보니 편하고 행복하게 찍을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에 비해 좀 더 가벼워지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선택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선 너무 좋았고 대만족이에요. 근데 한편으로는…. 실화영화에 대해 갖는 나만의 의무감이나 조그만 사명감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없어서 좀 심심하기도 했죠. 사실은(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 감독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길지 않은 시일 내에 차기작을 내놓을 거라는 것이다. 그는 “여건이 된다면 1년~1년 반에 하나씩 작품을 계속 낼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작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고 하자 박 감독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조연출로 있던 후배 국동석 감독 첫 작품 ‘공범’(2013) 제작을 맡으며 생긴 공백기 동안 현장이 몹시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오래 쉬다가 현장에 갔더니 너무 설레고 좋은 거지.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미생에 그런 말 나오잖아요(웃음). 현장 나가니까 막 피가 끓고 여기저기 쑤시던 게 하나도 안 쑤시고 그랬어요. 빨리 자주 (작품 활동) 해야지 실력도 늘고 내가 행복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