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강남 1970’은 한 마디로 ‘센’ 영화다. 유하(52) 감독이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10년을 이어온 ‘거리 시리즈’ 완결편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선택이 얼마나 큰 호응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 든다.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비열한 거리’(2006)로 이어진 시리즈 완결편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주먹’ 얘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강남 1970’에선 더 깊은 이야기를 다뤘다. 강남 개발이 막 시작되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천민자본주의에 기반한 가진 자들의 횡포,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찰한다.
이야기 중심엔 주인공 김종대(이민호)와 백용기(김래원)가 있다. 고아원에서 자라다 넝마주의가 된 두 사람은 어려운 형편에도 친형제 같은 우애를 지키며 살아간다. 집이 없어 철거 빈민촌에서 무단 거주했지만 본격적으로 철거가 시작되면서 이들은 마지막 남은 보금자리까지 빼앗긴다.
우연한 계기로 정치깡패 일에 연루된 두 사람은 경찰에 쫓기는 과정에서 헤어진다. 갈 곳 없던 종대는 조직폭력배 중간보스 강길수(정진영)가 양아들로 거뒀다. 이후 길수는 손을 씻고 새 삶을 시작했지만 종대는 길수 몰래 동네 건달 생활을 한다. 소식이 끊겼던 용기는 명동파 보스 양기택(정호빈) 밑으로 들어가 조직폭력배가 됐다. 주먹질은 물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 돼버렸다.
두 사람은 강남 땅 개발을 둘러싼 이권다툼에 휘말리며 재회한다. 서로 다른 조직의 조직원으로 만난 종대와 용기는 서로의 욕망과 의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정치권과 청와대까지 긴밀하게 연관된 땅 투기에 얽히며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면들의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적나라한 애정신과 거친 폭력신들이 이어진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에 대한 조롱 혹은 비판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강도가 너무 세다보니 보는 이는 점점 지치고 만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한 점도 아쉽다.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하 감독은 “돈의 가치가 도덕적·민주적 가치보다 우월해진 세태에 대해 돌아보고자 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영화는 두 사내의 의리, 가족에 대한 애틋함, 없는 자들과 있는 자들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 내제된 천민자본주의와 권력의 폭력성에 대해서까지 얘기한다. 강한 의도아래 자극적인 요소들을 쏟아내기만 하는 연출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유 감독은 “아무래도 ‘폭력 3부작’의 완결편이니 강도가 셀 수밖에 없었다”며 “70년대가 굉장히 폭력적인 시대이다 보니 폭력성을 배우들에게 좀 더 투영해서 찍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허가 인생도 허락되지 않았던 종대와 용기의 폭력이 과연 권력자들의 폭력보다 더한가라는 질문도 던져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주문을 충실히 수행한 배우들에겐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주로 젠틀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다 과감한 도전을 한 이민호는 무난한 변신을 선보였다. 비열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공감을 잃지 않으려한 김래원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강남 1970’은 시작부터 끝까지 엄청난 중압감을 유지한다. 상영시간 135분이 지나고 나면 어깨가 뻐근해질 정도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엔딩은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