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배우 이민호(28)에겐 늘 한류스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한류드라마에서 ‘로맨틱 가이’로 자주 등장해 아시아 여심(女心)을 사로잡은 탓이다. 지금의 이미지를 고수해 인기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십대의 끝자락에 선 그는 과감한 행보를 택했다. 스타가 된 뒤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던 영화, 게다가 건달 역할을 선택했다.
첫 주연작에서 연기변신을 꾀한 데 대한 부담감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 이 질문을 꼭 하리라 다짐하고 그와의 인터뷰에 임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민호는 마냥 해맑아 보였다. 영화를 내놓는 소감을 묻자 그는 “두큰두큰 합니다”라면서 크게 웃었다. 두근두근도 아니고 무려 ‘두큰두큰’이란다.
처음 주연한 영화 ‘강남 1970’에서 이민호는 건달을 연기했다. 서울 강남 부동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7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땅 투기를 둘러싸고 정치권력과 얽힌 건달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극의 중심인물인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자연스레 강도 높은 폭력신을 소화해야했다. 특히 이민호에겐 파격적인 연기변신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자 한 것이냐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노(No)’였다. 이민호는 “전 이미지 변신을 위해 움직이는 배우는 아닌 것 같다”며 “아직 20대이기 때문에 그런 강박관념이 크게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변신을 하고자 했다면 SBS ‘상속자들’(2013)이란 드라마를 안 하고 그 때쯤 시도했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남 1970은 어쨌든 여심을 잡는 영화는 분명히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또 항상 여자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역할만은 할 순 없으니까(웃음). 그렇다고 일부러 남자답게 보이려고 한 영화는 아니에요. 단순히 20대 후반이 됐을 때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어쨌든 제 안의 또 다른 모습 하나를 꺼낸 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합니다.”
지금은 최고의 한류스타로 우뚝 섰지만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2006)으로 데뷔한 이민호는 SBS ‘달려라 고등어’(2007), 영화 ‘울학교 이티’(2008) ‘강철중: 공공의 적’(2008) 등에 출연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KBS2 ‘꽃보다 남자’(2009)를 만났다. 드라마 한 편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은 이민호에겐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 전엔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있는 상태였다면 ‘꽃남’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회복했어요. 제가 좀 더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꽃남’이었던 것 같아요. 저를 세상 밖으로 던져준 것도 ‘꽃남’이고요. 물질적인 어려움을 한방에 해소시켜준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에(웃음). 여러 방면에서 정말 고마운 작품이죠.”
이때 이민호는 영화 출연에 관해선 한 가지 기준을 세웠다. 영화는 20대 후반에 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는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어린 배우가 맞지 않는 캐릭터를 무리하게 소화하면 설득력이 없어 보이거나 몰입하기 힘들더라”며 “나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영화를 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꽃남’ 이후엔 주연급으로 올라섰는데 주연 영화를 소화할 땐 무게감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던 것 같아요. 또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무거운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그런 메시지들을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는 성숙되고 분위기적으로도 그런 느낌이 나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강남 1970’에선 제가 억지로 남자다운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느낌은 못 받아서….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괜찮았던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영화 출연을 결정했을 때 주변 반응은 좋지 않았다. ‘왜 영화를 하느냐’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냉정히 비즈니스적으로 따졌을 때 영화는 드라마보다 훨씬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에서 ‘꽃남’과 SBS ‘시티헌터’(2011)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은 ‘상속자들’이 나온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비즈니스모델로 하고자 했다면 사실 상속자들 끝나고 이 영화를 안했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거예요. 그래서 ‘상속자들 잘 되고 왜?’ ‘굳이 왜 영화를 해?’라는 반응들이 많았죠. ‘참 좋은 선택이다’라고 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의아한 타이밍이긴 했죠.”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유하 감독 작품이기에 안심이 됐다. 이민호는 “더 많은 고민을 안 하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유하 감독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며 “워낙 (작품 안에서) 남자배우를 무게감 있고 진정성 있게 그려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품 선택할 때 그런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정말 타이밍 맞게 유하 감독님을 만난 것 같아요. 27세 때 대본을 처음 받았어요. 감독님께서 ‘상속자들’ 찍고 오는 걸 기다려 주신다고 해서 28세가 돼서 영화를 찍었죠.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대본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비열한 거리’(2006)로 이어진 유하 감독의 ‘거리 시리즈’ 완결편이다. 전작에 출연한 선배 권상우, 조인성 등과 함께 거론되는 걸 피하기 어렵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민호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아 ‘아, 내가 부담 가져야 됐었구나’ 라는 생각들을 한다”며 웃었다.
예상보다 훨씬 쿨한 성격에 놀랐다.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과 솔직한 대답은 계속됐다. 드라마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민호는 “드라마는 쪽대본 받으면서 촬영해야하는 상황도 많고 거의 4회 이상부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니까 편하게 한다고 해도 딱딱한 말투가 나올 때가 있다”며 “어쨌든 영화에서는 전체 대본을 이미 숙지를 하고 찍고 잠도 충분히 자기 때문에 드라마보단 좀 더 리얼하게 편하게 (연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본인이 느낀 영화의 매력이 뭐냐고 묻자 이민호는 “모든 게 매력입니다요”라면서 또 껄껄 웃었다. 그는 “일단 잠을 푹 자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감도 덜하고 확실히 몰입감도 높다”며 “여유와 집중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마련되는 게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배우들이 영화하고 나면 영화만 하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시는데 저도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든다)”면서 “하지만 드라마도 저에겐 놓을 수 없는 장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배우로서 목표가 뭐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이민호는 또 “전 목표도 꿈도 없다”는 다소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극히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힘을 내는 원동력은 ‘책임감’이라고 했다.
“제가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건 책임감이에요. 주연에 대한, 내 작품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팬들에 대한, 그리고 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제가 당당하기 위해선 그런 책임감들을 기본으로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5년, 10년 뒤에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을지 또는 어떤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될진 잘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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