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①] ‘개훔방’ 엄용훈 “대표 사퇴 노이즈 마케팅이냐고?”

[쿠키人터뷰①] ‘개훔방’ 엄용훈 “대표 사퇴 노이즈 마케팅이냐고?”

기사승인 2015-01-26 16:25:55

"[쿠키뉴스=최지윤 기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은 망한 영화다. 평은 좋았지만 지난달 31일 개봉 이후 관객 약 23만명 밖에 동원하지 못했으니 흥행에서 실패한 게 맞다. 그래서 제작·배급사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엄 전 대표는 “오랜만에 웰메이드 영화를 봤다”는 평을 들었지만 “배급자로서 분명히 실패한 게 맞다”고 했다. 그런데 극장에서 영화가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끝난 게 아니란다.

‘개훔방’은 개봉 초기 200여개 상영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퐁당퐁당’(교차) 상영이 이어졌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전국에 10여개 극장만 남았다. 네티즌들을 비롯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대관릴레이와 상영관 확대 요청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인걸까.

“솔직히 죽을 만큼 힘들다”는 엄 전 대표. “많이 외롭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이 일이 있고 나서 단 한 명의 선배의 전화도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누구는 ‘재미없으니까 극장에서 빨리 내렸겠지, 그냥 인정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 번 포기하면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되지 않나”며 “끝까지 해보는 거죠”라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퇴서에서 ‘개훔방’을 실패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개훔방은 실패한 영화인가?

영화 자체가 실패했다고 하면 배우, 스텝들에게 저는 정말 대역죄인이다. 영화는 실패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좋은 영화라고 인정해줬잖아요.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평은 ‘웰메이드’라는 거예요. 평단과 관객들이 그런 평을 해줬을 때 ‘영화가 실패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 했어요. 하지만 흥행에서 실패했죠. 영화가 갖고 있는 외적인 요소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훔방이 좋은 평을 받았는데 흥행에서 실패한 요인이 뭐라고 보나?

지극히 대기업 중심 구조로 바뀐 수직계열화 구조 때문이다. 기획, 제작, 배급, 상영, 부가 판권 사업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이 모든 것을 계열화시켰다. 시장논리에 의해 정상적인 경쟁을 벌일 수 없게 됐다. 멀티플렉스 시스템에서 계열 관계가 아닌 중소배급사 영화는 운이 따르지 않고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배급사들은 언론시사회 후 공정하게 평가한 뒤 상영관을 배급한다고 주장하는데?

자신들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냐. 언론시사회 후 평가한 뒤 배급을 결정했다면 어느 영화는 왜 2주 전에 예매 사이트를 오픈하냐. 또 다른 영화는 개봉 임박해서 예매 사이트를 오픈하고 다 다르다. 언론시사회에서 반응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개훔방 상영관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데 배급사에서 별다른 반응 없나?

네티즌들의 개봉관 확대를 위한 청원, 대관 상영 릴레이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많은 지적을 했지만 현재 대기업 프랜차이즈 극장에서 상영관이 거의 없어진 상태다. 각 지역 개별 극장과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중심으로 장기 상영을 하고 있다.

-배급사가 개훔방 상영관 확대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대관 상영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예매시도율이 높은데 관이 없는 거죠. 조조, 심야만 있어서 예매를 시도해도 할 수가 없어요. 예매율은 낮은데 예매시도율은 높다는 거죠. 결국 관객들이 직접 대관을 신청하는 상황이 왔어요. 돈백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잖아요. 한 번 봤는데 몇 번 더 보고 싶고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죠. 예매가 안 되니까 ‘내가 통으로 잡자’라고 생각하면서 대관 릴레이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럼 현재는 개훔방 손실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가?

사퇴한 걸 떠나서 투자자들은 나와 이 작품을 믿어줬다. 티켓 하나라도 더 팔아서 손실을 최소화시켜 주고 싶다. 배우와 스텝들한테 대박은 아니더라도 쪽박 친 영화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손실액을 최소화) 해야죠. 장기상영을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사퇴를 두고 일각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노이즈마케팅이라는 건 정말 처음 들었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노이즈마케팅을 해서 잘 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가족은 물론이고 회사 이사진, 주주, 직원들 누구하고도 사퇴 결정을 상의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주인 같은 마음으로 사퇴서를 썼고 이후 어떠한 언론과도 접촉을 안 할 생각이었어요.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죠.

-그런데 사퇴 이후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마음이 바뀐 이유는 뭔가?

‘직무유기’같다는 생각을 했다. 개훔방 배급사 대표라는 지위를 버리고 마지막 상영관에서 영화가 내려갈 때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왜 내가 도망가고 숨으려고 했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 jtbc ‘뉴스룸’ 출연 요청이 왔는데 처음엔 거절했다. 고민하다가 뉴스룸 방송 시작한지 20분이 지나서 다시 연락했어요. ‘내가 지금 생각을 바꾸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고 인터뷰 시작하기 4분 전에 도착했어요. 모든 관계자분들한테 큰 민폐를 끼쳤죠. 생방송이라서 내 생각이 편집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간다. 여기가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연 후 건물 앞에서 만난 남자 2분이 ‘뉴스룸 잘 봤다’며 ‘꼭 힘내세요. 관객의 힘을 믿으세요’라고 하더라. 그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날부터 연락 오는 모든 언론사에 인터뷰 응하겠다고 했다.


-이윤 창출 면에서 보면 개훔방은 돈이 되지 않는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모든 영화를 만들면서 돈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자선 사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는 수백 명의 스텝들이 함께 움직이거든요. 그들의 노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요. 투자자들한테 적어도 원금 이상은 상환해주는 게 맞는데 당연히 수익이 나는 걸 기대하죠.

-개훔방의 어떤 면이 관객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현재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불황이라는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힘을 잃었을 때 그 고통은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죠. 한 가장이 힘을 내면 가족 전체가 힘을 내게 되죠. 가족들이 힘을 내면 국가 전체가 힘이 나고요. 이 영화로 많은 사람들을 힐링 시켜주고 싶었어요. 웃고 울다가 끝나면 아무 느낌 없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돌아가신 부모님, 아이들이 생각나고 또 한번 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개훔방 팬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

-영화에 인위적인 면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일 싫어하는 게 인위적인 거예요. MSG 풍부한 영화 말고 된장처럼 발효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같았다’는 평을 들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요즘 영화들은 막대한 자본에 의해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 찍어내듯이 만들잖아요. CG로 커버하고 기술, 장치, 인력 도움을 받는 작품들이 많아요. 좋은 영화가 뭐냐고 하면 ‘영화가 거기서 거기죠’라고 할 수 있어요. ‘음식이 다 똑같지’하는 것 처럼요. 그런데 우리는 MSG 첨가되지 않은 걸 좋은 음식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개훔방이 MSG가 첨가되지 않았단 게 아니에요. CG도 들어갔죠. 그런데 적어도 자본에 의해서 감정이 재단되지는 않았잖아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은 뭐라고 하나?

다들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죠. 오죽하면 김혜자 선생님이 좋은 영화가 스크린 없어서 상영 못하는 건 부당하다고 스스로 자청해서 인터뷰를 했겠어요. 배우들이랑 감독이 답답하다고 문자 와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죠.

-당연한 질문일 수 있는데 영화 계속 만드는 이유 뭔가?

아빠한테 ‘왜 계속 아빠 하는거야?’라고 질문 하는 것 같다. (영화는) 현재 내 삶 자체다. 솔직히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다. 지금까지 개훔방이 제일 힘들다,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다. ‘지금보다 힘들진 않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세상에 영화로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직 좀 더 남아있다.

-혹시 사퇴서에서 하지 못한 말 있나? 혹은 사퇴를 하면서까지 관객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은?

(사퇴서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애써 감추려고 한 느낌 들지 않았냐. ‘아’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약자이기에 어쩔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은 몇 번 엎어지고 밟히다 보니까 내성이 생기고 웬만한 건 몇 대 맞으면 끝나겠다 싶어요.

한국 관객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콘텐츠를 보는 매서운 눈이 있어요. 반면 자기 자신의 판단보다는 남의 소리를 먼저 의식하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상해요. 흥행한 작품에서 이런 상황이 왔다면 ‘감사해요’라고 하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안타까워요. 관객 스스로가 즐기고 행복하게 누릴 문화 향유권과 스스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장했으면 좋겠어요. 관객 여러분들의 권리잖아요. ‘그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말하고 싶어요.

jyc8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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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윤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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