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70대에 찾아온 로맨스. 영화 ‘장수상회’는 이렇게 요약된다. 뻔한 사랑 이야기와는 다를 테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신선하진 않다. 따뜻하고 잔잔한 전개도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냥 끝내버릴 강제규 감독이 아니었다.
장수상회 모범 직원 김성칠(박근형) 할아버지는 까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해병대 출신으로 월남까지 다녀온 그는 늘 딱딱하고 퉁명스럽다. 말 한 마디 따뜻한 법이 없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동네 재개발 동의를 해달라는 마트 사장 장수(조진웅)의 부탁을 매번 단칼에 거절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앞집에 꽃처럼 예쁜 할머니가 딸(한지민)과 함께 이사 왔다. 이름도 잊을 라야 잊을 수 없다. 임금님(윤여정). 첫 만남에 경찰서까지 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이게 도리어 기회가 됐다. 오해를 해 미안해하는 성칠에게 금님은 “대신 저녁을 사 달라”며 생긋 웃는다.
그렇게 성칠은 조금씩 변해간다. 장수에게 찾아가 데이트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레스토랑에 갔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을 꼼꼼하게 필기까지 한다. 무사히 데이트를 마친 뒤 밤엔 홀로 누워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전화하겠다는 금님의 말이 생각 나 전화기를 머리맡에 놓고 잠든다.
두 사람은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극장이나 놀이공원에도 함께 놀러 간다. 젊은이들의 연애와 다를 바가 없다. 어른들께 이런 말은 실례일지 모르나 알콩달콩한 이들이 참 귀엽다.
노년의 연애에 빠져들었을 무렵 ‘깜짝’ 반전이 휘몰아친다. 주책 맞게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느라 혼이 났다.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복선들을 놓쳐선 곤란하다. 조각난 퍼즐들이 한순간 짜 맞춰지면서 비로소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드러난다.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3) 등 히트작을 낸 강제규 감독에게 첫 로맨스 영화 ‘장수상회’는 도전이었다. 윤여정의 표현대로 “폭탄 터뜨리는 영화 많이 하던” 그다. 감각적인 영상미는 또 다른 반전이었다. 황혼의 아름다움을 담은 듯한 해질녘 풍경들이 인상적이다. 새로운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
조연들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그러나 중간 중간 끼워 넣은 코믹 요소들이 붕 뜨는 느낌은 아쉽다. 처음 연기에 도전해 기대를 모은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찬열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은 좋았으나 배우로선 아직 부족함이 엿보였다. 물론 분량 자체가 적긴 했다. 다음 작품에선 역량을 맘껏 뽐낼 수 있길 기대한다.
영화는 박근형과 윤여정의 무게감으로 묵직해졌다. 얼굴 주름 하나에서마저 감정이 전해진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들이지만 역시 작품 안에서 가장 빛이 났다.
영화 속 두 배우를 보고 있으면 문득 아빠·엄마가 그리워진다. 부모님을 꼭 껴안아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수상회’를 보고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바빠질지 모르겠다. 다음 달 9일 개봉.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