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 임모 씨는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누구보다 기쁜 나날을 보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될 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임씨가 ‘육아휴직 제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의 특성상 육아휴직을 쓰기에는 눈치가 심하게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임씨는 “심한 입덧과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일하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아이를 낳은 후에도 경제활동을 해야 해서 경력을 단절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회사 측의 무언의 압박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 4년간의 공백을 깨고 재취업에 도전하고 있는 40대 초반 이모씨는 최근 고민이 깊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수년간 해왔던 일을 이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면접을 봤던 기업들은 공백기로 인해 나의 업무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전에 받던 임금을 얘기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다”고 토로했다. 또 “여성들의 직업정년이 50대인 경우가 꽤 있어 사회진출에 성공한다 해도 재직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요즘 서울의 한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경력이 있으면 취업이 수월할 것이란 생각은 경력단절여성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경력단절여성들은 각종 편견과 제한에 맞서야 한다. 30대 후반의 강모씨는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신 끝에 한 기업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취업준비생일 때보다 힘든 상황에 있다. 강씨는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타 직원들과는 다른 대우에 주눅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중요한 프로젝트나 성과를 올려 승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은 주워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에게 아이와 가정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회식자리에 부르지 않거나 남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력단절여성은 임신과 출산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하거나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일컫는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력단절여성 통계’에 따르면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여성은 213만9000명으로 이는 전체 기혼 여성 956만1000명 중 22.4%에 해당한다. 5명 중 1명을 조금 넘는다. 일하고 있지 않은 기혼 비(非)취업 여성 389만4000명의 절반 이상이 과거 직장에 다니다 포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것은 결혼(41.6%)이었으며 육아(31.7%), 임신·출산(22.1%), 초등학생 자녀교육(4.7%)이 그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경력단절여성이 111만6000명(52.2%)으로 가장 많았다.
2013년과 비교하면 육아(9.7%)와 임신·출산(5.4%), 자녀교육(27.9%) 때문에 일을 포기했다는 경력단절여성의 비율은 증가했지만, 결혼으로 인한 비율은 줄었다.
이처럼 늘고 있는 경력단절여성들의 비율에 정부 부처에서도 팔을 걷고 나섰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구인 구직자 간의 의견 불일치와 경력단절여성들이 취업할 수 있는 제한된 직종, 복지의 질이 떨어지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 등이 그 이유다.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을 돕고 있는 ‘새일센터’나 ‘여성인력개발센터’ 등이 각종 교육프로그램으로 취업 기회를 넓히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교육 자체 의미에서 그칠 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한 ‘2015년 여성유망직종 설명회’에서는 유망직종에 급식 조리원, 약국 전산원 등이 포함돼 “유망직종의 의미가 무색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원하는 많은 경력단절여성들의 특성상 낮은 질의 복지로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고 정규직으로 입사한다 해도 편견으로 인해 다른 직원들과의 대우가 달라 설움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성들의 나이는 물론 높은 학력도 이들의 재취업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심지현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경력단절의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라며 “사실 우리 정책이나 정부 노력을 살펴보면 해외 선진국이나 북유럽 국가에 비해 시스템이 나쁜 게 아니다. 매년 정부와 국책연구 기관에서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과제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기존의 정책을 통해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해 국내 경력단절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용주가 여성들의 출산, 산후휴가 등을 서포트 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받는 패널티는 크지 않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여성 근로자가 생애주기적인 이벤트에서 산후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여를 하는 것보다 이 사람을 해고 하고 그로 인해 정부에 내야 하는 패널티가 적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들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구조적인 결함이 생기게 되고 사회적 인식 자체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 시스템과 분위기를 바꿔야 하고 기업들이 정부의 시책과 함께 뜻을 함께할 노력을 자발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여성들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본인의 경력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육을 지식이나 스펙을 쌓기 위주로 받아왔지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세부적 경험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교육받지 못했다”며 “여성들은 경력이 단절됐을 경우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6개월 정도 아이 키우고 다른 기업에 가면 되겠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 특히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력을 소중히 생각하고 혹시나 경력이 단절되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