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박주호 기자] 현재 우리나라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보다 의학적 관점에서 더 심각한 질환은 결핵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메르스는 공기감염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결핵은 공기로 전파되는 대표적 전염병으로 결핵균 보균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결핵균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 ‘사회 속의 의료’에 올린 ‘2009년 신종플루의 교훈과 메르스’란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허 교수는 객관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우리나라에서 메르스보다 더 심각한 질환은 결핵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34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이 가장 높다. 여러 결핵약을 써도 듣지 않는 이른바 다제내성 결핵환자 비율도 OECD 국가들 중에서 단연 1위다.
2013년 전국적으로 3만6089명이 결핵환자로 진단받았다. 그해 1년간 2466명이 사망했다. 매일 100명이 결핵에 새로 감염되고 6~7명이 결핵으로 숨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지난달 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8일 현재까지 메르스 누적 확진환자 수는 87명이다. 이 중에서 6명이 사망했다(9일 현재 확진자는 95명, 사망자는 7명으로 늘었다).
국내 메르스 사망자는 50대 1명을 빼고 모두 70대 이상 고령인데다 기존에 앓던 질환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 중 2명은 80대였다. 사망자 중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 50대도 천식이 있었고, 관절염 치료 목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면역기능이 떨어져 메르스를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건당국은 추정했다. 암, 만성콩팥병, 만성폐쇄성폐질환 같은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던 사망자도 3명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결핵이 공기로 전파된다는 점이다. 결핵은 공기감염으로 퍼지는 대표적인 전염병이다.
이렇게 공기 전파되는 결핵균 보균자가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메르스 바이러스는 환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밀접하게 접촉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뿜어내는 비말(호흡기 분비물)을 통해 제한적으로 전파된다.
보건 당국은 ‘메르스 확진 환자의 1~2m 주변에 1시간 이상 함께 머문 사람’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격리, 관찰하고 있다.
이런 메르스 발병과 사망수준은 2009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 공포를 일으킨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사태 때와도 비교된다.
당시도 정부는 매일 신종플루 바이러스 감염 확진환자와 사망자 수를 발표하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민은 수개월간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하지만 신종플루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 결과를 분석해보면,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일반적인 계절독감보다 못했다. 신종플루 사태 때 신종플루에 걸려 숨진 환자가 처음 확인된 2009년 8월 15일 이후 그해 말까지 5개월간 공식적으로 확진된 환자는 74만835명에 달했다. 5개월간 하루 평균 5000명꼴의 환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5개월간 매일 5명꼴로 환자가 사망했다. 신종플루 사태 진행 1년간으로 따지면 신종플루 사망자수는 총 263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수치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계절독감으로 숨진 평균 사망자 수 2369명(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05~2008년 3년간 계절독감 평균 사망자 분석결과)보다 현저히 적다.
현재 맹위를 떨치는 메르스보다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 신종플루 조차 일반적인 계절독감보다 더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보건당국은 신종플루 사태가 진정된 2010년 이후에도 신종플루에 걸려 숨진 사망자가 나왔지만, 별다른 방역조처를 하지 않는다.
허 교수는 “메르스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혼란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 위기를 차분하게 관리해나가는 성숙한 행정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pi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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