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갑내기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달리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주간 피플 등에 따르면 헵번의 막내아들 루카 도티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 ‘집에서의 오드리’(Audry at Home)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안네와 마찬가지로 1929년생인 헵번은 영국 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나자 네덜란드인인 어머니를 따라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이후 헵번이 15세 때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식량 공급을 차단하자 2년여간 쐐기풀과 삶은 풀, 튤립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겨우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헵번은 170cm의 키에 몸무게가 40kg에 불과했다.
나치 점령기에 헵번은 나치에 맞섰던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를 위해 편지나 신문 등의 운반책으로 활동했으며, 발레공연을 해 나온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2년 뒤 헵번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는 대본을 받고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렸다. 헵번과 동갑내기인 안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아파트 책장 뒤에 숨어 겪고 느낀 이야기가 그의 경험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도티는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엄마와 안네 프랑크의 관계를 설명할 가장 좋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쌍둥이”라며 “엄마는 안네의 일기에서 1942년 8월15일 엄마의 삼촌 오토가 민간인 중 거의 처음으로 나치에 사살됐을 당시 정황도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는 한 번도 자신이 안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서 “엄마는 운명의 장난에 자신을 증오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티는 “엄마가 하루는 역에 갔더니 가축을 운반하는 열차에 유대인 가족과 노인, 아이들이 실려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시골로 간다고 했다”며 “엄마는 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지 몰랐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헵번이 안네의 일기 몇 단락을 외웠지만, 수차례 출연 제의에도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며 “엄마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다시 겪어낼 수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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