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무뇌아적 페미니즘’ 한 마디가 낳은 나비효과… 뇌 없는 사회가 이런 거라면

[친절한 쿡기자] ‘무뇌아적 페미니즘’ 한 마디가 낳은 나비효과… 뇌 없는 사회가 이런 거라면

기사승인 2015-12-02 16:21:55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시작은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씨의 작은 칼럼이었습니다. 패션잡지 그라치아에 지난 2월 김 씨는 ‘IS보다 무뇌아적인 페미니즘이 위험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죠. 해당 칼럼의 내용은 기괴했습니다. 김 씨는 IS에 자원해 논란이 된 김모 군을 거론하며 페미니스트들의 패착을 지적했죠.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 군을 거론한 김태훈은 “현재의 페미니즘은 뭔가 이상하다. 무뇌아적인 남성들보다 더 무뇌아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비유가 나빴습니다. 살인과 폭탄 테러 등으로 이미 국제적인 문제가 된 집단과 페미니즘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대두되며 김태훈 씨는 자신이 진행을 맡기로 했던 프로그램 등에서 하차하는 곤욕을 치렀죠.

김 씨의 일은 한 칼럼니스트가 치른 작은 해프닝으로 보였으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성 혐오’ 콘텐츠에 질릴 대로 질려 있던 네티즌들이 문제를 지적하는 구심점이 된 것입니다. 연이어 개그맨 유세윤·장동민·유상무의 ‘옹달샘’이 팟캐스트 라디오에서 여성 혐오가 짙은 발언을 하며 논란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유명인이 여성 혐오성 발언을 했다는 것을 떠나 한국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여성 혐오들을 지적하는 네티즌과 페미니스트, 여성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된장녀’ ‘김치녀’라는 단어가 아니더라도 너무나 많은 여성 혐오 사례와 범람하는 여성 혐오 발언들이 네티즌들 사이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이 관심들은 관심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각성을 인지한 대중들에 의해 점차 페미니스트 해시태그 운동, 언론사의 남성 위주 기사 서술 교정 운동 등으로 번지기 시작했죠. 이 과정에서 메르스가 번지며 생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메르스 갤러리는 당초 올해 한국을 강타한 전염병 메르스를 다루는 갤러리였지만 어느 순간 여성에 대한 억압에 지친 여성 네티즌들이 모이는 곳이 됐습니다. 그리고 메르스 갤러리는 지난 8월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SF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이름을 따 온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로 독립합니다. 메갈리아에 대한 반응과 유저 유입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간 여성 혐오 콘텐츠에 시달려왔던 모든 여성 네티즌들의 위안처와 둥지, 혹은 전진 기지가 됐죠. 지나친 미러링과 과도한 비유, 욕설로 지적받기도 했으나 해당 사이트의 전신이 디시인사이드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이른바 ‘메갈리안’(메갈리아 유저)들이 그간 받아온 여성혐오와 차별에 비한다면 이는 오히려 수위가 약하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9월 한 메갈리안은 사이트에 ‘소라넷’이라는 불법 음란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발했습니다. 남성 유저들이 모여 알음알음 ‘야동’을 공유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던 소라넷이 알고 보니 온갖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내용이었죠. 성범죄의 목록만 해도 몰래카메라 촬영, 강간모의, 나체사진 유포 등 다양하고 끔찍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소라넷은 단숨에 큰 논란이 되는 동시에 폐쇄 운동을 펼치는 여성 네티즌들과 “어차피 못 없앤다”고 조롱하는 남성 네티즌들의 대립점으로 급부상했죠. 음란물 공유가 불법인 국내 사정 때문에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폐쇄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죠.

그리고 지난달 30일 소라넷은 일부 게시판 폐쇄를 선언했습니다. 소라넷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언론 등지에 고발해온 메갈리아의 순기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완전 폐지는 아니었으나 10여 년간 불법 콘텐츠로 곪을 대로 곪았음에도 뻔뻔하게 유지돼오던 거대한 사이트 한 곳이 한 발 물러선 것만 해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라는 한 마디가 던진 나비효과는 실로 훌륭한 결과를 보이는 중입니다. 현재의 페미니즘은 정말로 무뇌아적 남성들보다 더 무뇌아적일까요. ‘무뇌’ 가 이런 것이라면 뇌 없는 사회도 살아볼 만 하지 않을까요.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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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기자 기자
rickonbge@kmib.co.kr
이은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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