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한국은 꽤 오랜 세월 월드컵에 참가한 이력이 있지만, 성적다운 성적을 거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2002년이 그 첫 발입니다.
그 전까지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은 2002년 폴란드를 상대로 첫 승리를 따냈습니다. 탄력을 받은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내로라하는 강호를 파죽지세로 격파하며 4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당시 승부차기에서 홍명보의 마지막 슈팅이 그물을 흔든 순간 “골-! 4강, 4강, 4강!”을 외치는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2002년 당시 월드컵 열기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전국 온 거리가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광화문에 모인 응원객 숫자는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국민이 이마만큼 한 마음 한 뜻이 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죠.
이후부터였을까요. 4년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특수를 맞아 온 나라가 들썩이고, 국민들의 의식 기저에는 ‘최소 16강’이란 기준이 박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죠.
하지만 그러한 기대만큼 축구에 깊이 파고들고, 실제 축구발전에 기여할만한 관심이 있었는지는 의문부호가 달립니다. 한국은 정말 16강에 진출할 자격이 있을까요?
월드컵은 ‘금수저’의 싸움?
“축구공은 둥글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은 항상 월드컵에서 톡톡 튀게 등장했습니다. 2002년엔 세네갈이 프랑스를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2006년엔 첫 월드컵 출전국인 가나가 당시 피파랭킹 2위 체코를 꺾고 16강에 진출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선 이탈리아, 프랑스가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하고, 브라질월드컵에선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가 조별리그에서 떨어지기도 했죠.
그럼에도 “우승엔 이변이 없다”는 속설처럼 상위리그로 갈수록 드러나는 윤곽을 보자면 “공은 둥글지만 ‘제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실제로 2000년 이후의 성적을 보면 2002년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하고, 이후 3대회 연속 유럽 팀이 석권했습니다. 3위까지의 성적을 보더라도 유럽이 10개 팀, 남미가 2개 팀입니다.
<사진> 2000년 이후 월드컵 성적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8득점 4실점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한 독일은 자국리그의 경기별 관중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유명합니다. 독일은 2002년 월드컵부터 단 한번도 3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팀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그것도 원정을 떠나 7대1으로 찍어 누른 그들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죠.
해외 스포츠 전문매체 ‘메일스포트(MailSport)’ 조사에 따르면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4만2609명으로 2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3만6695명보다 6000여명 많습니다. 전체 관중수는 1303만 명으로 잉글랜드의 1394만 명보다 적은 수치지만, 게임 수가 74경기나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기장별 관중 수는 16% 이상 많다는 결론이 납니다.
독일은 2005년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당국, 팬들의 꾸준한 관심이 어우러져 현재는 ‘가장 많은 자본이 오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보다도 더 많은 관중이 모이는 대회가 됐습니다.
메일스포트의 조사에 의하면 평균 관중 수 상위 34개 나라 중 22개가 유럽 소속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위 1~4위는 모두 유럽축구가 차지했고, 10위권으로 확장해 보면 6개 리그가 유럽 소속이죠. 파이가 커지자 오고가는 자본이 천문학적으로 늘었고, 리그는 더욱 유럽중심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지난 3번의 대회에서 유럽이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K리그는 ‘성장 중’
K리그가 8개월여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은 데 이어 시상식, 클린축구위원회 발족, 이적시장 등으로 비시즌임에도 여전히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말 ‘클린 K리그’의 일환으로 공개된 선수 전체 연봉은 국내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얼마 전 터키의 한 언론에서 보도된 ‘반 페르시 전북 이적설’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K리그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음을 보여줬습니다.
지난해 K리그 심판 한 명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리그 전체가 들썩였습니다만, 큰 그림에서 보면 대회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중파 중계를 들 수 있습니다. 공중파에서의 경기중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K리그가 2015년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죠. KBS, SBS에서 총 18차례 방송이 나갔고, 중계된 방송의 관중수도 평균 2만여명, 좌석 점유율도 50%대로 이 당시 경기만큼은 K리그 평균보다 3배 많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각 구단별 유소년 육성도 해마다 성과를 거두고 있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청룡, 기성용이 바로 이 유소년 시스템의 결과물이고, 런던 올림픽,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당시에도 대표팀 주축 선수 상당수가 프로팀 산하 유스 출신 혹은 K리그 출신 선수들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국가대표팀에서 이재성, 황의조, 권창훈 등 K리그 출신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죠.
기댓값은 최소 16강… 축구의식은 몇 강입니까?
한 나라의 축구발전에 요구되는 조건은 많습니다. 유소년 시스템이 잘 발달돼야 하고 프로팀의 인프라도 개선돼야 합니다. 선수들이 안정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시설도 확충돼야 하고, 이적제도도 선진화돼야 하죠.
그 중에서도 자국리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 나라 축구발전에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관심이 많아지면 그만큼 투자가 생기고,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늘어나면 경기장 인프라가 구축되며 스폰서나 광고도 더 많이 들어옵니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 감독, 코치, 심판도 경기에 좀 더 몰두하게 되고, 처우도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겁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경기장에 관중이 많이 오면서 티켓-머천다이징-마케팅, 더 나아가 중계권 수익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면 각 구단 입장에서는 선수 영입 및 시설 확충, 유소년 육성 등의 인프라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한껏 고양된 듯한 K리그였습니다만 ‘수치로 보는’ K리그는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3월 7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11월 29일 리그가 마감될 때까지 경기장을 찾은 관객 수는 총 176만238명, 평균 관중 수는 772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수치는 ‘메일스포트’의 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26위에 해당됩니다만, 이 매체가 표본으로 삼지 않은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의 축구리그와 기타 2부 리그를 포함하면 34위 수준입니다. 여기에 K리그 첼린지 관중수를 합산해 평균을 내면 5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죠.
2002년의 열기를 세계는 ‘월드컵 신드롬’이라 표현했습니다. 월드컵 전후로 고급스런 경기장들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며 관중 수도 오름세였습니다. 2000년부터 상승곡선을 그리던 K리그 평균 관중 수는 2002년 1만5000명에 육박했죠. 그러나 단 1년 새에 평균관중수가 9000여명으로 급격히 떨어지더니 이후 감소세가 지속되며 2014년엔 7000명대로 내려왔습니다.
2002년 대비 많은 게 바뀌었지만, 월드컵 시즌이 되면 기댓값은 항상 높습니다. 최소 16강, 혹 그 이상을 기대하는 눈빛들이 매섭게 빛나죠.
하지만 생각해봐야 합니다. 축구의식은 과연 세계 ‘몇 강’ 안에 드는지 말입니다. 관중 수만으로 모든 걸 평가할 순 없겠지만, 월드컵 부진에 진정 따끔한 비판을 내리면서도 축구를 사랑하는 이라면 자국 리그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지속성 있는’ 관심을 가져주는 건 어떨까요. daniel@kukimedia.co.kr
사진=국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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