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 김상혁, 신동욱 교수와 충북대학교 박종혁 교수 등으로 이뤄진 연구팀이 이 질문을 일반인 2000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김씨의 상태를 ‘진행암’이라고 정확히 답한 사람은 20.6%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상당수인 74.5%가 김씨의 상태를 ‘말기암’으로 보았고, 0.7%가 조기암, 4.4%가 모르다고 응답했다.
위 사례는 암환자들이 흔히 겪게 되는 생각의 오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말기암에 걸린 사람과 진행암에 걸린 사람을 몇 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 현재 말기암이라면 호스피스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반면 진행암이라면 다양한 치료방법을 모색하면서 생존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두 암은 치료방향이 다른 암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일반인들이 실제 임상에서 두 암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김상혁 교수는 “암 치료과정 중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져야하는데 ‘항암치료를 통해 1년 이상 생존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설명만으로 자신을 말기암 환자로 판단하고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민간요법에 몰두하는 등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다”며 “반대로 죽음을 받아드리고, 생을 정리할 수 있는 말기 암환자들이 소중한 시간을 효율적이지 못한 치료에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위 설문조사에서 새롭게 발견된 사실은 응답자의 교육 수준이 높거나 가까운 친인척이 암환자라도 암 진행 상태에 대한 용어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용어의 혼동은 무엇에서 비롯될까. 연구팀은 진솔하지 못한 진료실 분위기를 꼽았다. ‘말기’란 용어 자체를 꺼내는 순간 담당 의료진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심한 불안감, 동요를 느끼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장암 환자를 둔 주치의는 “외국에선 의료진이 환자와 기대여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은 남은 수명을 이야기하거나 좋은 못한 치료결과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의료진을 불신하거나 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있어 상투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죽음을 관련한 부정적 이야기를 꺼려하는 한국인 정서가 암 용어의 정확한 이해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상혁 교수 역시 “의료진도 말기암과 진행암이 무엇인지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정확한 이해가 향후 치료방향을 좌우하는 만큼 환자와 보호자는 말기암과 진행암에 대해 개념적으로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