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명단’ 제보자 “경찰, 첫 보도 후 성매매업자들에 전화해 ‘증거 없애’”

‘성매매 명단’ 제보자 “경찰, 첫 보도 후 성매매업자들에 전화해 ‘증거 없애’”

기사승인 2016-03-04 11:29:55
사진=국민일보 DB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최근 22만 명에 달하는 성매수 고객 명단을 만들어 관리한 의혹을 받은 서울 강남 성매매 알선 조직이 검거됐다. 이에 성매수자에 대한 수사가 연계될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정작 명단을 확보한 경찰이 태만한 수사로 그간 성매수 남성을 단 한 명도 잡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 해당 경찰의 직무유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 리스트에 경찰이 다수 포함돼 있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2일 강남 성매매 조직 총책 김모(36)씨와 성매수자를 유인한 채팅조직 책임자 송모(28)씨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50여명을 입건해 2명을 구속했는데, 두 사람 모두 성매매 공급자다. 성을 매수한 남성은 수사 한 달 반여 이상이 지난 시점까지 단 한명도 없었던 셈이다.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이른바 ‘강남 성매매 리스트’ 사건 이후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해당 사건 수사를 오리무중에 빠뜨리고 있는 실태를 고발했다.

이날 뉴스쇼에 출연한 권민철 기자는 해당 ‘리스트’를 직접 확인했다면서 “엑셀로 된 파일을 보면 아래에 쉬트(sheet)가 있다. 쉬트가 5개 있는데, 첫 번째 쉬트에 처음 공개된 6만여 명의 명단이 있고, 나머지 4개 쉬트의 명단을 모두 합하면 22만 명이 된다. 성매매와 성매매 시도자가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리스트에는 대부분 실명이 없지만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해당 인물에 대한 간략한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성매매 금액으로 보이는 액수는 20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이 적혀있고, 성매매남성의 인상착의, 때로는 직업과 타고 온 차량 종류, 차량번호, 접선 장소, 성매매가 이뤄진 장소 등이 불규칙하게 적혀 있다.

이렇듯 꽤 상세한 인적사항이 있지만 경찰은 수사에 다소 무딘 대처를 하고 있다. 권 기자는 “경찰은 리스트의 신빙성을 의심하지는 않는 거 같다. 다만 리스트만으로는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고 전했다.

담당 수사대는 매매여성, 일시, 장소, 단서 등이 있어야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개된 리스트만 가지고는 범죄를 특정지어 기소할 수 없다는 거다.

이에 대해 권 기자는 “수사가 쉽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 명단에 경찰관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리스트에 경찰이 다수 포함돼있는 것을 우려해 수사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도 있다. 수사대는 리스트에 ‘경찰’이라 기록돼있는 인물은 45명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엑셀에 ‘경찰’ 혹은 ‘형사’라고 명시된 사람은 그 10배에 해당하는 455명이다.

이에 대해 권 기자는 “수사를 엉터리로 한 거다”며, “45명은 엑셀 쉬트 5개 가운데 1개에 있는 명단만 검색한 숫자다. 나머지 4개 쉬트는 검색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단순 경찰 또는 형사라고만 기록돼있는 것도 있지만 소속과 상대 여성 이름 등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근무 중인 경찰도 리스트에 포함돼있다. 경찰 당사자는 이를 “함정단속 차 예약전화를 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확인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 기자는 “수사대는 경찰에 대한 수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며, “(수사대에서 지명한) 45명의 경찰을 살핀 결과 문제가 없다면서 다른 사람들도 굳이 수사할 필요성이 없다는 거다”고 말했다.

수사대는 “성매매가 이뤄진 것은 액수라든가 매매 여성 가명이라든가 그런 게 있다. 그런데 (리스트에 포함된) 경찰 번호엔 그런 게 없다. 아마 번호만 따 놓고 도망가 버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찰 중에 메모가 남겨져 있는 이들도 있다. 권 기자는 “확인도 않고 메모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오히려 메모가 없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권 기자는 “성매매 메모가 있다는 건 그 경찰관이 돈을 지불하고 단순히 성매매를 한 걸 의미한다. 하지만 메모가 없다는 건 돈을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거는 성매매가 아니라 성접대다.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고 분석했다.

권 기자는 “경찰관이 업소와 얼마나 자주 통화를 했는지 통화기록 조회 같은 것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며, “리스트에 경찰번호라고 적힌 게 455건이나 나왔는데, 통화기록은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시쳇말로 간이 부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권 기자는 “경찰이 아예 성매매업소를 비호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며, “성매매리스트가 처음 보도된 게 1월 15일이다. 그런데 보도직후 경찰이 업소 쪽에 전화를 해서 증거 전부 없애라고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권 기자는 “1차 보도가 나가고 나서 (성매매업자들이)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상황 커지니까 빨리 접고 컴퓨터 안에 있는 드라이버 다 빼서 파기하고, 대포폰 없애고, 빨리 떠라’라는 내용이다”라고 한 성매매 명단 최초 제보자 라이언앤폭스 김웅 대표의 음성을 공개하기도 했다.

권 기자는 “실제로 경찰이 범행현장에 출동한 건 증거가 없어진 다음이었다”며, “증거가 없으니 22만명 성매수남 수사를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은 22만 건은 현재 수사 대상 아니라고 대 놓고 말하고 있다. 업주측에서 별도의 장부에 기록한 5000건만 수사 대상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 정도다”면서, “사회분위기는 성범죄에 대해 더욱 엄격해 지고 있는 추세인데, 경찰만 역주행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한편 2010년 서울강북의 성매매 대부 ‘이경백 사건’ 당시엔 업주와 전화한 사실만으로 69명의 경찰관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daniel@kukimedia.co.kr
이다니엘 기자
dani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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