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열 작품 평론] 생각동산, 그곳에는 흥(興)이 있다–박정수 미술평론가

[유휴열 작품 평론] 생각동산, 그곳에는 흥(興)이 있다–박정수 미술평론가

기사승인 2016-07-12 22:47:00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이 있다고 말합니다. 흥(興)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동하여 즐거움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동양정신에서 말하는 유희(遊戱)에서 유(遊)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흥(興)은 행동을 유발하고 유(遊)는 정신을 유발한다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둘 다 작은 일에서 시작되어 현실의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휴열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갑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체득한 욕망과 정신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좀 더 세상사는 이야기보다 조금 더 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사는 동내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얻기도 하며, 동산에서 채집한 풀잎에서 행복한 이야기를 찾아내곤 합니다. 그에게 있어 자유로운 정신활동은 곧 놀이이며, 놀이는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한 흥(興)으로 이어집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아도 그의 놀이 자체가 흥미이며 사회활동의 기본을 이야기 합니다.

2000년을 중심으로 제작되어지는 일련의 <生-놀이>시리즈가 그러합니다. 아무생각 없이 붓을 휘둘린 것 같습니다. 어떤 목적 없이 알루미늄 판을 두들기고 접합하고 꿰맨 것 같습니다. 그의 놀이는 곧 흥(興)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흥은 좋은 것이나 나쁜 것,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있는 것과 없는 것 등과 같은 대별자를 모두 포함합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불안정 된 정신과 마음, 속된 욕망을 해소시킬 만큼의 즐거운 생각놀이가 있습니다.

생각은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은 사람이나 어떤 일에 대한 관심이나 기억 혹은 그것에 대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란 삶에 대한 집착이나 생존에 대한 본능적 활동의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유로움과 자발성과 관련되어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어릴 적 대여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집중한 딱지치기의 골목이 어른이 되어서 보면 왜 그렇게 좁은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친구들과 힘차게 뛰어놀던 앞산의 높이나 술래잡기 오징어 놀이하던 공터도 좁아져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놀이하던 그곳에서 사회의 규율과 질서를 조금씩 배워왔습니다. 대장질 하던 형아의 말 한마디가 놀이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해도, 그 질서와 법칙이 매일 바뀌어도 해질녘까지 놀았습니다.

유휴열의 작품을 보면 어릴 적 놀던 놀이동산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몸이 놀고,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어 때 구정물 흐르는 얼굴과 방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래위로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져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의 작품에는 사람들의 감성과 인간적 이해, 자연과의 교감, 사회와 사람의 조화로운 삶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알루미늄을 두들기고 잇고 붙이면서 요철(凹凸)이 생겨납니다. 어느 부분은 새 모양을 한 산이 되고, 어느 부분은 꽃모양으로 이루어진 청용열차가 되어 생각을 뛰게 합니다. 초목이 우거진 곳에서는 휴식을 취하고, 유려하고 길다란 잠자리 날개에서는 물을 마시고 세상을 구경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놀이동산에서는 생각이 즐깁니다. 감상자 스스로 감각을 발전시키고 경험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같이 없던 생각이 생겨납니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창의력을 길러줍니다.

2008년 이후의 <인간(人間)>시리즈에는 한층 강화된 생각놀이터가 형성됩니다. 다루어지는 소재나 내용들이 함축되고 정리되면서 흥(興)의 놀이가 포괄적 세계로의 확장되어 짐으로 이해됩니다. 동수나무가 조용히 맞이하는 시골마을의 동내어귀나 콘크리트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상징성 있는 문주가 있는 8차선 도로의 도심의 입구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모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인간(人間)>시리즈의 작품들은 땅과 하늘이 올려지고 내려앉아 있던 <놀이>시리즈와 대동소이합니다. 새가 있던 자리에 북채가 자리하고 하늘이 있던 자리에 상모와 꽃으로 장식한 고깔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놀면서 세상과의 조화로운 소통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떤 물질적 욕망도 없는 사람형상을 한 인간의 대변자로서 세상을 즐기는 방식입니다. 징을 치고 북을 치면서 신명나는 세상을 꿈꾸는 시간과 공간의 통합된 새로운 세상의 생존방식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를 이해하면서도 이에 순응하는 수동적 삶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이 활발할 수 있는 진보된 세상을 향한 발돋움입니다.

예술이거나 사는 방식이거나 안다는 것은 보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꼭 같이 적용되는 일은 없습니다. 유휴열이 꿈꾸는 세상 또한 보편적이거나 객관성을 이해하는 범위의 것이 아닙니다. 항거하거나 부정하는 반(反)의 세계 또한 아닙니다. 자연에 속한 대상으로서 지금보다 나은 지식을 초월한 자유로운 생각의 영역을 표현해 냅니다. 작품의 깊이가 더 해 갈수록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양해집니다. 규칙과 보편의 영역이 아닌 새롭거나 다르게 이해하는 생각의 영역에 중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흥(興)과 놀이의 관계에서 생각이 즐길 수 있는 친화성을 이야기 합니다.

문화를 구성하는 일은 예술가의 창의 활동에 중심축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힘든 상상과 사물의 색다른 쓰임새를 찾는 일이기 때문에 생각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유휴열이 자신의 작품에 더욱 진지해지고 심각한 정신활동이 지속될수록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 받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가 더욱 철학적이고 힘겨운 정신노동이 지속될수록 우리 사회는 좋은 정신을 제공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흥(興)은 철저하게 자유로운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놀이의 종류와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마음이 동해서 즐거움으로 일어지는 ‘흥(興)’이라고 하는 개념은 언제나 같습니다. 사회 환경보다는 인문학적 관계성이 이기 때문에 근본이 변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놀이는 집단문화입니다. 놀이는 목적이 없습니다. 즐거우면 그 뿐입니다. 다만 놀이를 통해 얻어지는 다양한 의미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가의 놀이는 혼자이지만 이미 혼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한 개인의 놀이가 사회적 창의성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예술가에 있어서는 자신 스스로가 이미 사회의 일부이며 자연에 소속되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놀이는 사회의 창의와 직결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들을 한 개인이 아니라 예술가라 칭합니다.

조규봉 기자
ckb@kukinews.com
조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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