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 “제약 산업이야말로 ‘첨단 산업’이죠. 신약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3상의 전 단계를 거쳐 완제품이 출시되기까지 성공확률이 5%도 안될 정도로 낮습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냈습니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신약개발은 위험부담이 큰 산업이지만 혁신의 가치(Value of innovation)가 있어 도전할만한 영역”이라며 “고혈압치료제인 카나브를 우리 손으로 개발해, 모든 임상 과정을 거쳐 만들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에 수출하게 된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보령제약의 전신은 1957년 서울 종로 5가에 자리잡은 보령약국이다. 창업자인 보령제약그룹 김승호 회장이 군인 시절 월급을 모아 약국 문을 열고, 1963년 보령약품이 설립되면서 보령제약그룹이 출발했다. 이제는 보령제약이라는 이름이 더 국민들에게 알려져 있다. 약국에서 출발했지만 수십년의 의약품 개발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신약개발에 나섰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혈압 신약을 만드는 제약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 주인공은 국산신약 15호인 고혈압치료제 ‘카나브’다. 이 제품은 보령제약에서 만든 대표적 신약이자 세계로 진출한 글로벌 의약품으로 평가된다. 1992년 후보물질 발굴부터, 본격 개발에 착수해 카나브가 탄생하기까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개발에 투입된 비용만 500억원에 달한다. 흔히 김승호 회장의 뚝심이 통했다고 평가된다. 지난 2011년 출시된 카나브는 그해 연매출 100억원을 기록하고, 국산 대표 신약으로 글로벌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 사장은 “신약만 잘 만들어서는 안된다. 존슨앤존슨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적시에 필요한 약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며 “결국 신약개발 못지않게 글로벌 마케팅 경험도 중요하다. 카나브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태홍 사장은 “다국적기업들이 한국 제약사들을 이제 중요한 ‘플레이어’로 보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좋은 연구인력과 제조역량을 갖췄기 때문에 세계적인 제약사들과의 간극이 크지 않다. 다만 이제는 좋은 신약을 개발해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령제약은 카나브를 비롯해 자사 제품의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현재 파트너를 맺은 곳은 중남미 25개국을 총괄하는 멕시코 스텐달사, 러시아 알팜사, 중국 글로리아사, 동남아 13개국을 총괄하는 쥴릭파마사 등이다. 최근 멕시코 제약기업 스텐달사와 2723만달러(한화 약 301억원) 규모의 듀카브와 투베로의 기술수출 계약 성과와 함께 현재까지 총 3억7529만달러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처음부터 미국이나 유럽 등에 진출하기보다는 중남미나 동남아를 거점 시장으로 삼았다. 최 사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막대한 임상비용이 투입된다. 독일 식약청이 75세 이상 중증의 고혈압 환자에 대한 임상데이터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맞추려면 추가 임상 비용이 최대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부담이 컸다”며 “우리나라 임상 데이터를 신뢰하는 중남미 국가부터 뚫자는 전략으로 갔다. 중남미 국가 사람들에 대한 임상도 철저히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 사장은 신약개발은 여전히 안전성 이슈가 큰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약은 생명과 직결된다. 때문에 부작용을 0%에 가까울 정도로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연구개발 역량 뿐 아니라 안전성 등의 제조역량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부담도 여전히 크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보령제약의 경우 앞으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자신했다. 현재 카나브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항암제, 간암, 치매 등 총 12개의 신약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항암제 개발도 시작했다. 명확한 작용기전과 임상에서의 PoC(Proof of Concept)가 입증된 표적항암제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암세포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 RNA를 치료용 자살 유전자의 RNA로 치환시키는 신개념 항암제, 고혈압과 당뇨 또는 고지혈증 동반 환자를 목표로 한 신규 합성 신약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신약 개발에 있어 협력 연구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태홍 사장은 “제한된 시간과 비용으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외부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혁신 속도를 가속화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령중앙연구소도 대학이나 연구기관(가톨릭의대, 국립암센터 등)과의 협력 연구로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용을 10% 이상 수준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단디 봐라.” 최 사장은 “IT나 자동차 산업과 달리 제약 산업은 독점 산업이 아니다. 제약사 랭킹 1위 기업도 매출이 50∼60조원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시대에 한국도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며 “자체 역량을 키워 선택과 집중을 해 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최 사장은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약가 정책이다. 혁신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제약강국을 원한다면 그것은 과대망상에 불과하다”며 “위험부담이 큰 신약개발에 뛰어든 제약사들이 좋은 성과를 냈다면 거기에 걸맞는 인센티브 등의 지원책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제약강국이 되는 길”이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