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이사장 직접 변론 나선 담배소송 항소심…‘질환 인과’ 입증 관건

건보 이사장 직접 변론 나선 담배소송 항소심…‘질환 인과’ 입증 관건

기사승인 2025-01-15 19:38:29
한 시민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담배와 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고 담배회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담배소송’의 항소심 제11차 변론이 진행됐다. 이날 변론엔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이 직접 의견 진술에 나섰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20년갑 이상 흡연자 중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10년간 지급한 공단부담금 533억원에 대한 배상을 담배회사들인 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에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 건강에 미치는 흡연 폐해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흡연 질환 진료비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다. 20갑년은 하루 1갑(20개비) 이상씩 20년간 흡연한 상태를 가리킨다.

건보공단은 1심에서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가 확인된 연구 결과들이 있고, 담배회사들이 제조 과정에서 폐암 등 질병 위험성을 줄이는 조치와 경고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한 발병 가능성, 담배의 설계상·표시상 결함 부존재, 담배의 중독성 축소·은폐 불인정 등을 이유로 담배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한 건보공단은 2020년 12월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간 건보공단은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 입증 연구 등 추가 증거자료를 마련해 재판부를 설득해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선 환자 개인이 위험인자(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 시기, 노출 전 건강 상태, 생활습관, 가족력 등을 고려해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건보공단은 2022년 4월28일부터 2023년 1월30일까지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2023년 8월말 발표했다.

건보공단 “담배·질병 인과관계 충분”

이날 변론에서 양측의 쟁점은 담배와 질병 간 인과관계로 좁혀졌다. 건보공단 측은 흡연이 폐에 끼치는 위험도는 90%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의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통상 하루 20개비 정도의 흡연량은 폐암 위험도를 10배가량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다며 인과관계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원고(건보공단) 측은 “면역학적 연구들에 의하면 흡연자에게 폐암 등이 발생할 위험성이 비흡연자보다 10~20배 더 높고, 최근 연구에서도 30년 이상 20갑년 넘게 흡연한 흡연자의 경우 소세포폐암 발생 위험이 10~4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연구 결과를 살펴봤을 때 흡연과 폐암·후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되고 법적 인과관계도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담배회사들이 중독성이 증대되도록 담배를 설계·개발하고 흡연의 위험성을 부인·은폐했으며, 담배 독성을 제거하거나 대체 소재를 택하지 않은 것 등을 미뤄봤을 때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정기석 이사장은 의견 진술을 통해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사회 전체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40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가진 호흡기내과 전문의이기도 하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소송’ 항소심 제11차 변론이 종료된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정 이사장은 “호흡기 질환을 연구하는 교수와 일반 의사들은 1심 결과에 모두 놀라워했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실로, 세계보건기구(WHO)는 간접흡연까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흡연은 명백하고 직접적이며 핵심적인 발암물질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환자도 니코틴 중독으로 담배를 끊지 못하고 병실에서 몰래 흡연한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중독성을 은폐하고 그 알림마저 지연시킨 데 대해 책임져야 한다”며 “만일 법원이 전과 같은 판결을 한다면 ‘흡연을 적당히 관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담배로 인해 매년 6만명이 사망하고 건보 재정이 3조5000억원 투입되는 나라에서 국민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전해선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담배회사 “흡연 외 요인들 따져봐야”

담배회사들은 담배 첨가물의 안전성이 검증됐다며 암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담배 외에 폐암을 일으키는 다른 위험요인의 가능성이 있으며, 인과관계의 입증이 덜 됐다는 설명이다. 또 담배의 중독성은 다른 물질보다 약하고, 흡연자들이 직접 선택해서 소비하는 기호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담배회사 측은 “흡연으로 인한 질병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하더라도 음주, 대기오염, 스트레스, 음식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연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언론 보도와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라며 “이런 점을 토대로 흡연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을 따져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 이사장은 재판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무엇이 약점인지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오늘 변론 과정에서 들은 것들이 많은 만큼 법무실과 논의를 가져갈 계획”이라며 2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 구두변론 기일은 4월23일 오후 4시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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