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실시된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투표결과는 공화당 트럼프(D. Trump)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 후보는 전체 선거인단 538인 중 과반을 넘는 290인을 확보해 232인을 얻은 클린턴(H. Clinton) 후보를 이겼다. 그런데 이번 대선결과를 놓고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에서는 클린턴 후보에 비해 확연한 우세를 보였지만, 득표율에서는 오히려 클린턴이 1,598,268표(1.2%) 앞섰기 때문이다. (11월22일 현재)
유권자의 표(Popular vote)를 더 얻고도 낙선했다는 것은 민의의 왜곡으로 민주적 선거원리에 반(反)한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그런 점에서 득표와 선거결과의 역전현상을 초래하는 현행 선거인단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승자독식방식’으로 결정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은 하원의원 435인과 상원의원 100인의 수만큼 할당된 535인에 워싱턴 DC의 3인을 합해 총 538인으로 구성된다.
선거인단의 수는 캘리포니아가 55인으로 가장 많고, 텍사스 38인, 플로리다와 뉴욕이 각각 29인으로 이들 4개 주가 차지하는 선거인단의 규모는 전체 선거인단 대비 30%에 육박한다. 반면 알라스카, 델라웨어, 몬타나,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버몬트, 와이오밍, 워싱턴 DC의 선거인단은 모두 가장 적은 3인에 불과하다.
전체 선거인단 538인 중 48개 주와 워싱턴DC에 할당된 529인은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전부 차지하는 승자독식방식(Winner-take-all)으로 결정된다. 예외적으로 선거인단 5인과 4인을 각각 선출하는 네브라스카와 메인 주에서는 하원 소선거구 단위로 배분된다.
압도적인 다수의 주가 채택하고 있는 승자독식방식은 투표제도 유형 중 정당블록투표제(Party Block Vote, PBV)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정당블록투표제는 1인1표제 하에서 다수의 의석을 대상으로(중대선거구) 1표라도 더 얻은 정당이 모든 의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적용하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제1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어 득표와 의석의 불비례성이 극대화되고, 사표(Wasted votes)가 과다하게 발생한다.
미국의 선거인단제도는 개별 주에서 정당블록투표제로 선출된 선거인단을 연방차원에서 합산해 당선인을 결정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 결과 후보가 유권자로부터 얻은 득표수는 선거인단의 수와 불일치하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득표율과 선거인단 수의 불각한 불균형 발생
미국 선거인단제도의 문제점은 후보자의 득표율과 선거인단의 수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 또는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균형을 넘어 이번 대선과 같이 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 48.4%의 득표율로 47.9%를 득표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보다 0.5%p 앞섰으나, 선거인단 수에서는 265대 271로 패한 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유권자 득표를 더 많이 하고서도 패배한 후보는 1824년 존 퀸시 애담스(John Quincy Adams), 1876년 루더포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 1888년 벤자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등 모두 5인이었다. 반면 득표와 선거인단수의 역전까지는 아니지만 과도한 불비례를 보인 사례는 모두 4건으로 확인된다. 1984년 민주당의 월터 몬데일은 득표율 40.6%로 13인의 선거인단을 확보했으나, 상대후보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그보다 18%p 많은 58.8%의 득표율로 선거인단 525인을 가져갔다. 또 1980년에도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는 득표율 41%로 49인을 가져갔지만, 상대후보인 로널드 레이건은 득표율 50.7%로 489인의 선거인단을 얻었다.
1936년에는 알프 랜던 공화당 후보가 득표율 36.5%로 선거인단 8명을 가져갔지만, 루즈벨트는 득표율 60.8%로 선거인단 523명을 가져갔다.
1912년 공화당의 태프트 후보에게는 득표율 23.2%로 선거인단 8명이 할당된 반면, 윌슨에게는 득표율 41.8%에 선거인단 435명을 돌아갔다.
미 선거인단제도 문제점 위한 두 가지 방안
현행 미국 선거인단제도가 초래하는 모순적 결과는 1표의 차이로 당선인이 결정되는 상대다수제방식(First Past The Post, FPTP)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대다수제에서는 상대후보보다 많은 득표차로 얻은 선거인단의 수보다 적은 득표차로 이긴 선거인단이 많다면 득표와 선거인단 수의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정치의 양당체제도 역전현상을 초래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전체 선거인단을 양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득표와 선거인단 수의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다수제와 결합하는 선거인단의 주별 할당방식에 있다. 유권자의 1표로 결정되는 선거인단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선거인단의 수가 득표율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 개선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나는 현재 정당블록투표제 방식으로 할당하는 방식을 하원 소선거구별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55인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캘리포니아의 경우 현행처럼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에게 55인을 모두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53개 개별 소선거구를 중심으로 다득표자 순으로 할당하는 방식이다.
득표비례로 선거인단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네브라스카와 메인 주의 경우도 실제로는 이 같은 소선거구제로 할당되기 때문에 교차당선인이 나와 비례제와 같은 효과를 보인다. 물론 선거인단을 1인씩 상대다수제 방식으로 선출하더라도 이번 대선에서와 같은 득표와 선거인단 점유의 역전현상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출 수 있다.
또 다른 방안은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비례제 방식으로 할당하는 것이다. 비례배분하면 모든 후보는 득표한 만큼 선거인단을 가져가기 때문에 역전현상은 물론 득표와 선거인단 배분의 불일치도 차단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를 예로 들면 현행 상대다수제 방식으로는 힐러리가 55인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갔지만, 득표비례로 배분할 경우 힐러리 34인, 트럼프 18인, 존슨 2인, 스타인 1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