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존경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기에...”
그날을 기억한다. 지난 2013년 오병희 전 서울대병원장이 취임을 기념해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건배사를 외치기 전 한 말이다. 정치적 입장을 운운하려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갈리지만, 그가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18년 간 유신체제로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 최고의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장이 ‘환자’보다 먼저 ‘특정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것이 의아했다.
오병희 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받들어 다양한 시도를 해왔으나, 어쩐지 병원 노조들은 늘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오병희 전 병원장의 연임을 결사 반대하기도 했다. 당시 오 병원장이 기조로 내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받든 원격의료 도입 등을 비롯한 ‘의료영리화’ 추진에 앞장섰고, 노조는 “의료공공성을 해치는 ‘의료민영화의 선봉자’이자, 방만 경영의 주역이 오 원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연임에 실패했다. 올해 서울대병원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 주치의였던 ‘서창석’ 현 서울대병원장이 새롭게 임명됐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청와대가 개입한 낙하산 인사’ 혹은 ‘비선실세가 지목한 의사’라는 의혹도 있었다. 그럼에도 국립 서울대병원의 혁신을 이끌 ‘젊은 의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서 원장은 취임 이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단골 병원 의사와 그 배우자가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갖가지 특혜 제공과 이를 위한 압력 행사를 주도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 주치의로 근무할 당시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대리진료 의혹, 비아그라와 갖가지 미용주사제 구입 등의 의혹도 제기됐다. 이후 서울대병원 노조는 병원장 직권남용, 부정청탁 혐의로 서 병원장을 고발했다.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오병희에 이어 서창석 병원장. 운명일까. 국내 최고의 국립대학병원이라는 명성은 ‘환자’ 중심의 최고의 진료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어쩐지 최근의 국정 청문회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의사들이 ‘환자 그리고 국민’ 이 아닌 ‘대통령과 권력’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라는 회의감마저 든다.
2016년 12월 전·현직 서울대병원장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두고 국회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서 서로 ‘진실’을 가리겠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이 ‘거짓이 무엇인지 밝히겠다’며 두 서울대병원장의 대질심문에 나섰다. 같은 사안을 두고 두 의사의 말은 전혀 다르다.
서창석 병원장은 “오병희 전 원장이 주도해, 안종범 수석과 박채윤 와이제이콥스 대표와 함께하는 자리가 성사됐다”고 주장하고, 오병희 전 병원장은 “서창석 전 주치의가 청와대의 뜻이라고 ‘김영재 봉합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모임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누가 주도를 했건 간에, 결국 청와대의 뜻을 살피기 위해 전·현직 서울대병원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만남을 했고, 김영재라는 인물은 최순실 단골병원으로 특혜를 받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두 병원장 모두 김영재 봉합사를 도입하기 위한 모임에 가담한 것만은 사실이다.
나비효과였을까. 그때 그 불길한 예감이 지금은 현실이 됐다. 그때 ‘박정희’를 거론한 전 서울대병원장,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병원장. 두 인물은 결국 청와대를 위해 일했고 ‘국민의 건강 증진’은 뒷전이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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