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 항암제 허가 기다리다 사망…“허가부터 심평원 보험등재까지 최장 600일”

말기암 환자, 항암제 허가 기다리다 사망…“허가부터 심평원 보험등재까지 최장 600일”

기사승인 2017-01-19 00:02:00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저소득층 환자들이나 민간 실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들의 상당수는 효과적인 신약이 있다고 해도 치료를 위한 선택지가 없다. 정부에서 고가 치료제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을 하지 않으면 약값 부담을 견디지 못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생명과 직결된 항암제의 신속한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시판허가 절차와 정부의 보험급여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18일 ‘생명과 직결된 항암제, 신속한 환자 접근성 보장 방안’을 주제로 한 환자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신약 접근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말기암 등 중증질환의 환자들이 돈이 없어 치료를 중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정부에서 생명과 직결된 항암제에 대한 보험급여 등재 절차에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특히 의약품의 시판허가와 급여결정을 위한 신청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생명에 직결되는 항암제가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을 경우 환자가 고가 약값을 부담하기 어려워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서, “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시판허가와 급여결정을 위한 신청과 동시에 심사 결정을 진행해서 허가 후 신약이 시판되는 즉시 모든 환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값으로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통상적으로 항암제가 보험급여로 적용받기까지는 일련의 절차가 필요하다. 제약사의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1상과 2상, 3상 등의 전임상을 시행하고 이와 관련한 입증 자료를 만든다. 이후 식약처가 시판허가를 내면, 심평원의 급여결정과 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을 거쳐, 건정심 심의 의결을 통해 보건복지부 고시 하에 ‘건강보험 급여’ 결정이 난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항암제 시판 허가 후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기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실제 OECD 국가 중 항암제 시판 허가 후 건강보험 급여 등재기간을 살펴보면, 한국은 제약업계 기준 평균 601일(복지부 기준 평균 320일)나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평균 245일보다 약 2~3배 길다. 독일의 경우는 약 70일 밖에 소요되지 않아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이 높은 국가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값비싼 신약을 100% 본인부담으로 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일레로 3세대 표적항암제 ‘타그리소’가 보험급여가 거부되면서, 대안 치료제가 부족한 폐암 환자들은 절망에 빠졌다. 현재 타그리소의 월 평균 치료비는 약 700만원으로, 1년 치료비는 840만원이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경우 1년에 약 1000여만원의 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한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와, 옵디보 역시 효과적인 치료제로 알려져 있지만, 보험급여 적용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위험분담제,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등의 제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 사무처장은 “식약처와 심평원이 동시에 심사 결정을 해서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후 제약사와 건보공단이 약가협상을 완료한 후 차액을 정산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사무처장은 “혁신적 항암제가 시판 후 급여가 되기 전까는 가격부담을 낮추기 위해 제약사를 통한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 또는 ‘약제 무상공급 프로그램’을 실시하거나 민간기금이나 공공기금 조성 등을 통한 것도 대안이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시판 후 인도적 차원의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 사용해 환자들에게 약기 조기에 공급된 바 있다.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xpanded Access Program)’이란 불치병에 걸렸거나 말기암 환자가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경우 식약처가 시판허가 전의 신약을 무상으로 공급해주는 제도다. 

반면 안전성 입증을 위한 절차를 밟지도 않은 항암제에 대해 신속한 허가와 보험등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강아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약사는 “미국 FDA도 혁신신약에 대한 신속 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은 허가 이후 안전성 문제 등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게 탈락된다”며 “신속 허가 절차를 밟아 약이 시판이 되어도 제약사와 공단 간의 가격협상 과정에서 또 다른 고민에 봉착한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실비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한정된 건강보험재정 여건이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신약에 대해 보험급여 등재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조건부로 허가된 신약의 경우 추가 임상을 통해 부작용이나 유효성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환자들에게도 어떤 절차를 통해 약이 허가를 받게 된 것인지, 부작용 등은 무엇인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의약품은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며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약 허가신청과 건강보험 급여신청을 동시에 진행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식약처에서 약의 허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심평원에서 급여등재를 위한 경제성평가 등을 할 수 없다. 단계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허가평가연계제도의 약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 혁신신약에 대한 보험급여 등재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newsroom@kukinews.com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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