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배우 배성우는 자신의 직업이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몸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정신적 노동이 많다는 것이다. “연기라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잖아요. 준비하는 일부터 계획하고 고민하고 결과물에 대한 기대와 걱정까지, 정신적 노동을 하는 직업 같아요.” 그가 주연한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이 개봉 첫 주 185만 관객이라는 기록적 성적을 거둔 가운데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배성우를 만났다.
“관객수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또 다행이고요.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에 한해서는 연기를 더 잘 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있어요. 저는 항상 제 연기를 보는 것이 조금 창피해요. 그래서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언론시사회만 해도 저는 결국 못 봤어요. 대신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를 기다리면서 극장 앞에서 커피를 마셨죠.”
1999년 연극으로 데뷔한 후 연기 생활만 19년차인데도 아직도 스스로의 연기가 생경하단다. ‘씬 스틸러’라는 별명을 지나 이제는 큰 주연도 턱턱 맡고, 롤이 분명한 단계에 와 있는데도 그렇다. 관객들에게는 제법 눈에 익은 배우지만 “항상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까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하는 배성우다.
배성우가 ‘더 킹’에서 맡은 양동철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서 고시에 붙어 검사가 됐다. 주인공인 박태수(조인성)가 개천에서 용 나온 모양새로 검사가 된 것과는 다르게 상류층 집안에서 나고 자란 기득권의 사람이다. 배성우는 언뜻 전형적인 인물들을 연기해온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내에서 설명되지 않은 여백에 대해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의 전형적인 부분들은 대부분 여지없이 배성우의 연기로 꽉 채워져 살아 숨쉬는 것이다. 개성이 넘치는 것은 물론이고 관객들에게 자연스러운 재미마저 준다. 악역이라 할지라도 배성우가 연출해내는 인간미는 동정심마저 들게 한다.
“어떻게 보면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악역도 인생의 목표가 있다고 생각해요. 악역들은 대부분 작품 내에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사실 그 악역들도 사람이니만큼 ‘주인공을 괴롭히자’가 인생의 목표일 리가 없거든요. 못된 일을 저지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까 못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을 생각해서 인물의 인생 목표 설정을 해요.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그 이기심이 부딪치다보니 갈등 구조가 더 첨예해지면서 비로소 재미라는 것이 나오거든요.”
말하자면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 연기하지 않은 캐릭터, 모두의 안에는 별개의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잖아요. 웃긴 일과 마음 아픈 일, 화나는 일과 속상한 일. 한 사람 안에 복합적인 우주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우주가 보다 다이내믹하게 표현되어야 좋은 연기라고 생각하죠.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슴으로 먼저 느끼고 나타내야지, 머리로만 생각하고 나타내려다가는 관객에게 들켜버려요. ‘자, 이제부터 웃길 거야,’ 혹은 ‘자, 이제부터 너를 울릴 거야.'라고 설명해놓고 시작하면 재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onbge@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