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안정된 직장과 반듯한 가족, 증권회사 지점장이라는 사회적 입지와 부유함까지 가진 재훈(이병헌)의 삶은 언뜻 그린 듯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가 자신 있게 고객에게 권했던 채권이 부실채권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재훈은 삶에 의문을 가진다. 자신이 여태까지 믿어온 가치, 과연 잘 살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 재훈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에게 뺨을 맞은 날, 충동적으로 호주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산다. 호주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 진우가 있다.
그러나 막상 호주에 가 보니 아내 수진(공효진)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겹다며 관두었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내고, 기술이민을 준비하는 수진의 모습을 보고 선뜻 다가서지 못한 재훈은 발걸음을 돌려 시드니 시내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호주에 체류하며 워홀러로 일하다 사기를 당한 지나(안소희)를 만나며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는 일종의 로드무비의 형태를 띤다. 끊임없이 시드니의 거리를 걸으며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삶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훈의 궤적은 끝내 시작점으로 돌아가 영화 전체를 아우른다. 그 과정은 언뜻 심심해 보이지만, 서서히 가랑비에 옷이 젖듯 관객을 침범하고 끝내 후반부의 반전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여운을 남긴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16년 만에 감성 드라마로 돌아온 이병헌은 재훈 역을 맡아 관객을 자신의 여정으로 훌륭히 이끈다. 영화 속에서 이병헌은 몇 번의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은 모두 다른 의미와 흡입력을 지닌다. 흔히 배우가 스캔들에 휩싸이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지만, ‘싱글라이더’속 이병헌에게서는 어떤 구설수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쳇말로 ‘악마의 재능’이다. 개와 함께 흙먼지 가득한 길을 걷는 이병헌의 뒷모습에서 관객들은 동정을 넘어선 동질감을 느낀다.
이주영 감독은 17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점에서 열린 영화 ‘싱글라이더’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사는 삶, 시간과 내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를 그리고자 했다”며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눠보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오는 22일 개봉. 15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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