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감독 홍상수)를 보는 모든 이들은 현실과 영화를 분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부터 영화계를 크게 흔들어댄 주연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불륜은 영화와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영화가 자전적 이야기라 고백한 홍상수 감독이니만큼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가 아닌 홍상수와 김민희를 본다. 불륜에 빠진 이들을 현실과 분리할 수 없어 도리어 실소를 자아내는 대사 몇 가지.
“나 이제 남자 얼굴 안 봐. 잘생긴 사람은 다 얼굴값 해.” -영희(김민희)
독일로 간 영희는 해변에서 그리워하는 유부남 감독의 얼굴을 그려본다. 제 곁을 지키는 친한 언니 지영(서영화)에게 영희는 “잘생긴 놈들 많이 만났어. 나 많이 놀았다. 그런데 잘생긴 것들은 얼굴값 해..” 라며 외모와 조건은 사랑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신은 머리가 조금 벗겨지기 시작하는 유부남 감독을 사랑한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영희는 ‘잘생긴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 뒤에 함께 따르는 말은 잘 모르는 듯 하다. 잘생기면 얼굴값을 하지만, 못생기면 꼴값을 한다.
“너 성숙해졌다. 여성스러워졌어.” - 천우(권해효)
영희는 강릉으로 자신이 아는 선배를 찾아온다. 시간이 남아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갔는데, 그곳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선배 천우를 만난다. 천우는 단도직입적으로 영희에게 유부남 감독과의 불륜설에 대한 것을 물으며 그간 마음 고생한 영희에게 ‘여성스러워졌다’ ‘여자 다 됐네’ 라는 소리를 줄곧 한다. 그간 페미니스트를 표방해온 권해효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야한 대사다. 유부남 감독과의 불륜은 견뎌낼 시련으로 포장되며, 그 시련을 견뎌내고서야 영희는 비로소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영희가 본래 남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진정한 여자는 불륜, 혹은 사랑을 감히 대변하는 불륜으로 완성되는 것인가? 홍상수 감독의 여성관 속 여성성은 시련을 견뎌내야만 완성되는 불완전한 것일까.
“매일 후회해. 후회가 달콤해졌어. 후회하다가 죽고 싶다.” - 상원(문성근)
강릉 해변에서 영희를 우연히 만난 유부남 감독 상원은 이미 헤어진 영희와 술자리를 가진다. 자신의 스태프들이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상원은 안톤 체홉의 ‘사랑에 관하여’의 한 대목을 읽어주며 영희를 지극히 사랑했음을 드러낸다. 영희는 "독일에서 새 작품을 제안받았다“며 ”신인감독인데 돈 벌려고 작정한 영화예요.“라고 자신의 ‘괜찮음’을 드러내다가도 갑자기 ”전 폭탄이잖아요. 파괴적이죠. 주위 사람들 망가트리잖아요!“라고 괴로움을 토로한다. 불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사랑이기에 벗어날 수 없음을 호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블랙코미디다.
지난 13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 선 두 사람은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고, 나름대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다” “저희 만남을 귀하게 여기고 믿고 있다” “진심을 다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있으며,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번만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홍 감독은 말했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오로지 홍상수와 김민희의 궤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 또한 홍상수 감독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오는 23일 개봉. 19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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