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3회에 걸쳐 스리랑카의 전쟁범죄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27일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6개국을 담당하는 스리랑카의 대사 자가뜨 자야수리아(Jagath Jayasuriya)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 국제공항에서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오후 10시 두바이 국제공항 도착, 이튿날 스리랑카로 귀국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대사 업무를 마치고 복귀한 것이라고 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단체 ‘국제진실정의프로젝트’(ITJP, 이하 정의 프로젝트) 대표 야스민 수카는 그가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 프로젝트’는 8월 28일 자가뜨 자야수리아 대사를 브라질 법원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법원에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했다. 정의 프로젝트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자가뜨가 대사 업무를 보는 나라 모두에서 그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 ‘도주’하듯 브라질 떠난 스리랑카 대사
정의 프로젝트가 자가뜨 자야수리야를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한 건 그가 군인시절 저지른 전쟁범죄 혐의 때문이다. 그는 2007년 8월 7일부터 2009년 7월 15일까지 스리랑카 북부 소수 타밀족 지역에 속하는 와니 지역의 ‘와니(Vanni)특수사령부’의 총사령관을 지냈다. 이 시기는 스리랑카 내전이 막바지에 치달은, 26년 내전(1983-2009)의 가장 참혹한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다.
특히 2009년 1월 2일 타밀족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타이거(LTTE, 이하 타밀 타이거)의 통치영토 수도인 킬리노치가 정부군에 함락된 이후, 그해 5월 18일까지 취재진과 구호기관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채 ‘목격자 없는 전쟁’이 치러졌다. 이 5개월 동안의 사망자만 해도 최소 4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 마지막 전장을 총괄한 인물이 바로 와니특수사령부의 총 사령관 자가뜨 자야수리야였다. 이 사령부는 ‘조셉 캠프’로도 불린다.
자가뜨 자야수리야는 내전이 끝나고 두 달 후인 2009년 7월, 제19대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됐으며 중장(Lt.Gen)으로 승진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3년 장군으로 승진하면서 군 참모총장(Chief of Defense Staff)이 됐다. 이처럼 생애 이력이 군인이고 최고직위인 군 참모총장까지 지낸 그가 남미 주요 6개국 대사직을 맡으며 외교가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배경 중 하나는 외교관의 ‘면책특권’으로 분석된다. 스리랑카는 내전 이후 전쟁범죄 혐의를 받는 장성들을 외교관직에 두루 앉혀 사법처리에서 자유로운 신분을 부여했다. 이들이 전쟁 영웅이고 보호대상이라는 인식은 정권이 바뀌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스리랑카 정부의 시각은 그러했다.
이렇듯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변신한 인물은 세 명이다. 우선, 자가뜨 디아스(Jagath Dias)는 전쟁 막바지 57사단장이었다. 그는 전쟁 직후인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베를린 주재 스리랑카 대사를 지냈다. 이어 군 참모총장을 거쳐 은퇴했다. 그가 전쟁범죄로 고발된 적은 아직 없다.
두 번째 인물은 샤벤드라 실바(Shavendra Silva)다. 그는 전쟁 막바지 58사단장이었다. 2010년 8월 스리랑카 유엔 상임 부대사로 임명된 그는 ‘유엔대사’ 신분으로 여전히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 샤벤드라 실바는 심지어 2012년 1월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유엔평화유지군 자문위원회 아시아태평양 대표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 자문역은, 그러나 그룹 내 반대 의견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자가뜨 자야수리야가 북부 내전 지역 전체 사령관을 맡았다면, 자가뜨 디아스와 샤벤드라 실바는 전선 현장을 전두 지휘하는 현장 사령관이었다. 이들 중 전쟁범죄 고발을 먼저 당한 건 샤벤드라 실바다. 2011년 9월 그는 뉴욕 남부지방 법원에 고문과 법외사형 등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됐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은 타밀타이거 바띠깔로아(동부지방 대표도시) 사령관이었던 라메쉬(Ramesh) 대령의 아내 와뜨살라 뚜라이라사싱함(Vathsala Thurairasasingham)과 정부군의 폭격에 아버지를 잃은 한 타밀 여성이었다.
타밀 타이거 라메쉬 대령은 2009년 5월 패색이 짙어갈 무렵, 정부군에 투항했다. 그러나 이후 소식이 알려지지 않아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 사례로 분류됐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라메쉬대령을 심문하고 고문 총살한 스리랑카 정부군의 휴대전화 영상이 유출되면서 그의 사망이 확인됐다. 머리에 피가 흥건한 사진을 분석한 국제법의학 전문가들은 그가 머리에 한방의 총을 맞고 즉사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라메쉬 대령의 아내가 제기한 샤벤드라 실바 소송은 계속되지 못했다. 미국 법원이 2012년 2월 샤벤드라 실바 전범 사례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엔 부대사로서의 면책특권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그의 ‘유엔 명함’에 대한 자격론을 제기하며 유엔이 그를 공식 거부하고 면책특권도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아직 이 같은 조치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인물 자가뜨 자야수리야 남미대사도 전쟁범죄로 고발된 것이다.
자가뜨 자야수리야에 대한 고발 건은 샤벤드라 실바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그는 희생자 가족이 아니라 스리랑카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증거를 수집해온 정의 프로젝트에 의해 고발됐다. 스페인 인권 변호사인 카를로스 카스트레사나 페르난데즈(Carlos Castresana Fernandez)가 변호를 맡았다. 카를로스는 칠레,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다양한 독재자, 전쟁 범죄자들 사건을 다룬 경력이 있는, 국제인권법의 베테랑 변호사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을 맡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충격 받았다. 이번 소송은 피노체트(칠레독재자) 비델라(아르헨티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증거들을 갖고 시작한다. 이 소송은 잊힌 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것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계속)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