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반등기’라는 게 있다면 한국축구는 올해 이 충격을 경험했다. 국내에서 20세 이하 월드컵 개최, 성인 남자 축구대표팀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아시아인 EPL 최다골 경신 등 표면적으로 반가운 소식들이 꽃을 피웠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월드컵 진출 ‘당한’ 국가대표팀의 부진, 축구협회 임원 공금 횡령, 국가대표만 오면 득점력이 떨어지는 손흥민 부진 등 축구팬을 분노케 할 만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히딩크 논란’이 이러한 불신에 방점을 찍었지만 11월 평가전과 12월 아시안컵을 통해 끓어오르던 여론은 그나마 잠잠해졌다. 쿠키뉴스는 2017년 한국축구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를 10가지로 추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①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당했다
탈 많고 말은 더 많았던 한국 성인 남자 축구대표팀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아시아지역 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서 경우의 수 늪에 빠진 한국은 마지막 2경기에서 최대한 승점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붉은 지옥을 실현시키겠다’던 이란과의 홈경기는 수적 우위에도 0대0으로 끝났고 2위 경쟁상대인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전 역시 0대0에서 종료 휘슬이 울렸다.
2경기 승점 2점으로 스스로 무너질 준비를 마친 한국이다. 경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앞선 경기에서 우즈베키스탄이 최하위 중국에 패하고 시리아는 최종전에서 이란과 비기며 한국은 타의로 월드컵에 ‘진출 당했다.’
② 히딩크 논란
대표팀 성적 부진과 맞물려 거스 히딩크 감독 선임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단순 감독 선임 문제가 이만큼까지 이슈로 급부상한 이유는 경기력 저하와 함께 한국 축구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경질 후 신태용 감독은 소방사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어렵사리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냈지만 헹가래 논란 등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마침 2002 월드컵 신화를 쓴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부임을 원한다는 루머가 퍼졌다. 루머는 팩트로 확인됐고 히딩크 영입론이 급물살을 탔다.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주류는 히딩크 감독을 당장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반대 목소리를 내면 강한 역풍을 맞을 정도로 팬들의 요구는 거셌다. 대한축구협회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신 감독의 임기를 월드컵 무대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 무게를 실었다.
갖은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한국 축구대표팀은 반전에 성공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전성기를 이끈 토니 그란데 코치와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가 대표팀에 합류하며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신 감독은 11월 평가전과 12월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을 전환점으로 삼았다.
③ 동아시안컵 우승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한일전에서 신 감독이 반전을 만들었다. 국민 여론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최종전에서 4대1 대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대회 2연패를 달성함과 동시에 일본을 상대로 7년 7개월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한국은 2010년 5월24일 승리한 이후 5차례 일본을 만나 3무2패로 한 번도 일본을 이기지 못했었다.
중국, 북한 등 전력상 우위의 팀들에게 고전했던 탓에 팬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일전을 대승으로 장식하며 신 감독은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김민우+김진수, 김신욱+이재성 조합 등을 찾아내며 유럽파에 치중돼있던 공격 포메이션의 폭을 넓힌 것 또한 호재다.
④ 공금 횡령+회전문 인사로 몸살 앓는 축구협회
대표팀이 경기력 반전을 일궈냈으나 개혁에 대한 팬들의 목소리는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축구선수 출신의 축구협회 임원이 공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불구속 입건됐다. 조중연 전 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해 이회택 전 부회장, 황보관, 김주성 등 11명은 2011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220여회에 걸쳐 1억1000여만원을 업무와 마음대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는 대표팀 경기력 하락 이슈와 맞물렸기 때문에 팬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팬들은 축구협회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등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표출했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다. 인적 쇄신과 함께 경기력 개선, 유소년 시스템 보완 등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이 파장으로 김호곤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이 사의를 표하고 이용수 부회장, 안기헌 전무이사 등이 물러났다. 이후 이임생, 박지성 등 협회와 큰 연줄이 없는 인물이 자리를 메웠으나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이 전무이사로 선임되며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⑤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 8강에서 넘어지다
축구 대회로는 2번째로 이름값이 있는 국제대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20세 미만(U-20) 한국 축구대표팀은 6월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에서 걸려 넘어졌다. 포르투갈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한 판이었다. 이들은 초반부 단 2차례 슈팅으로 2골을 뽑아내며 승기를 잡았다. 반면 한국은 점유에서 앞섰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에 꽁꽁 묶이는 등 효과적으로 경기를 풀지 못했다.
실전경험은 경기력으로 나타났고, 당시 U-20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도 이를 어필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했다. 포르투갈 선수 명단을 보면 해외 유명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우리는 K리그에서조차 명단에 못 들어가거나 대학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대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이승우와 백승호는 대회 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소속팀이었던 바로셀로나와의 협상 실패로 각각 헬라스 베로나(이탈리아), 페랄라다(스페인)로 적을 옮겼다.
⑥ 여자축구 평양의 기적…아시안컵 본선 진출
한국 여자 성인 축구대표팀이 평양에서 기적을 연출하며 내년 4월 열리는 2018 AFC 여자 아시안컵 본선행을 이뤄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지난 4월 평양에서 진행된 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과 한 조에 편성됐다. 조 1위를 해야만 아시안컵 본선에 오를 수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여자 축구 강호인 북한과 같은 조에 속한 것은 재앙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자 축구대표팀은 극적인 동점에 힘입어 예선 3승1무 조1위를 차지, 본선행을 기어코 성사시켰다.
8개월여 뒤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재대결이 성사됐지만 여기선 북한이 웃었다. 지난 11일 열린 2차전 맞대결에서 한국은 북한의 노련한 운영에 밀려 0대1로 패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⑦ 유럽에서 날아오른 손흥민… 황희찬·권창훈도 맹활약
손흥민을 탈(脫) 아시아급이라 표현하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손흥민은 2016-2017시즌 리그 14골, 시즌 21골을 넣어 한국인 유럽리그 최다골과 아시아인 EPL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 시즌에는 해가 바뀌기 전에 10골(리그 6골)을 넣으며 달아오른 기량을 한껏 자랑 중이다. 최근엔 4경기 연속 골로 팀의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이대로라면 ‘이달의 선수’ 또한 노려볼 수 있다.
황희찬(잘츠부르크)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12경기 4골로 부상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황희찬은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측면 공격 자원으로 경쟁력 있는 권창훈(디종) 또한 프랑스에서 17경기 5골로 활약 중이다.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석현준(트루아)은 12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월드컵 주전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다만 유럽파 대부분이 공격 포지션에 자리한 점은 국가대표 밸런스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국내에서 잘 하던 수비수들은 중국, 중동 등 큰돈이 움직이는 시장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선 K리그 선수들 연봉이 매년 공개되는 데에서 이 같은 문제들이 파생된다고 지적한다.
⑧ 전북 현대, 2년 만에 챔피언 복귀
지난해 승부조작 혐의로 몸살을 앓았던 전북 현대가 1년 만에 왕좌로 복귀했다.
전북 현대는 이번 시즌 22승9무7패 승점 75점으로 2위 제주(66점)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K리그 클래식 5번째 우승컵을 들었다. 득점(73), 실점(35), 득실차(38) 모두에서 1위를 기록한 그야말로 압도적인 결과다.
지난 시즌 승부조작 혐의로 승점 9점이 깎이며 우승을 놓친 전북이다. 이번 시즌엔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으며 지난해 아쉬움을 달랬다. 2009년 처음으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달성한 전북은 2011, 2014, 2015, 2017년 우승컵을 들며 최다 우승팀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⑨ 올해를 빛낸 선수 #손흥민 #이재성 #이민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손흥민, 이민아, 이재성이 수상했다.
축구협회 성인 남자 부문 수상자인 손흥민은 소속팀과 국가대표를 오가며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올 시즌 소속팀 토트넘 훗스퍼에서 9골(리그 5골)을 넣었다. 국가대표로는 올해 9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특히 11월 A매치 평가전(콜롬비아, 세르비아)에선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여자 부문 이민아는 올해 WK리그에서 28경기에 나와 14득점 10도움을 기록하며 인천현대제철의 5년 연속 우승에 핵심 역할을 했다. 득점과 도움 모두 브라질 선수 비야에 이어 2위다. 대표팀에서도 센스 있는 볼터치와 패스로 공격을 이끌며, 아시안컵 예선 평양원정과 동아시안컵에서 활약했다.
프로축구연맹 MVP에 선정된 이재성은 전북 현대 소속으로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볼 간수 능력을 앞세워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이재성은 리그 28경기에 출전해 8골 10도움을 기록했고 MVP는 4회 수상했다. K리그에서 선정하는 베스트 일레븐 부문에선 중앙 미드필더에 이름을 올렸다.
⑩ AFC U-19 조별리그 가볍게 3승... 본선행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18 축구대표팀이 지난 11월 파주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F조 조별예선에서 4전 전승으로 본선에 안착했다. 상대는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말레이시아였다.
예선전은 완벽했다. 한국은 4경기 22골을 몰아쳤다. 실점은 ‘제로’다. 다득점 상황에서도 수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정정용 감독의 맞춤형 전술, 계속적인 피드백, 선수들의 의지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팀으로 성장 중이다.
본선은 내년 10월18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