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버스킹을 가게 될 것 같아요.” 근황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가수 전인권씨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그는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적잖이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새 앨범도 준비 중이다. 녹음 작업도 한창이다. 그의 새 앨범에는 특별한 노래가 실릴 예정이다. 평창동계올림픽 헌정곡인 ‘정선아리랑’이 그 노래다. 아리랑은 아리랑이되, ‘전인권식’ 아리랑이다. 이 한 곡을 위해 그는 강원도 정선 곳곳을 돌아다녔다. 정선의 정취와 감상, 애끓는 한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였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우연치 않게 ‘정선아리랑’을 들어볼 수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단단한 바위가 떠오르는 듯 했다. 붉은 혀를 넘실대며 폭발하던 고대의 열기를 간직한 채,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기암절벽이 된 바위. 전씨는 “대중음악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 ‘정선아리랑’ 새 앨범 수록해 선뵐 것
- 정선 곳곳 둘러보며 정취 담아
- 한국민요 규격화 어려움… 훗날 ‘모험’ 의미 갖게 될 터
29일 오전 종로구 삼청동에는 겨울바람만 가득했다. 매서운 날씨는 행인들의 발길마저 얼어붙게 한 듯 했다. 전인권씨는 짙은 남색 코트에 줄무늬 목도리 차림으로 나타났다. 혼자였다. 예의 검은 안경은 잘 어울려 보였다. 대화 내내 목소리에 변화는 없었다. 그의 말은 친절하지 않다. 귀보다 가슴을 열어야 잘 들린다. 그의 음악이 그러하듯. 단기간에 가슴을 열 도리가 없어 반복해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녹음된 그의 목소리는 구성진 가락처럼 귓가에 감겼다.
◇ 아리랑, 아리랑… 꺽고 쳐지는 진짜 '맛'
▶전인권=정선아리랑은 그러니까, 포크 음악이에요. 단순합니다. 미국에서 민요인 ‘해 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포크 음악으로 유명한 것처럼 이 곡도 그래요.
▷기자=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우리 음악, 이런 의미군요.
▶록을 해오던 사람들은 이렇게 넘기는 걸(그는 ‘꺾는다’고도 표현했다) 좋아해요. 실제로 많이 꺾고요. ‘정선아리랑’에는 흑인 음악의 요소도 많이 담겨 있어요. 아리랑, 아리랑 (이 부분은 노래를 부르며 설명했다). 곡이 잘 나와서 우리 멤버들도 몹시 흡족해했습니다.
▷어떻게 작업에 참여하게 된 건가요?
▶(올림픽은) 나라의 큰 행사니까 ‘잘 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 심혈을 기울였어요. 비록 시간이 부족해서 충분히 만족스런 녹음을 하진 못했지만, 메시지의 전달은 됐어요. 가사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요.
▷작업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곡을 만드는데 5일이 걸렸고요, 녹음은 하루에 다 끝냈습니다. 가사도 상당부분 제가 썼고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담았고요, 작업을 위해 정선으로 떠났어요.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몇분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정선아리랑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술 마시면서 서로 신세 한탄하는 것 말예요.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데 참 좋았습니다. ‘계절 온지도 모르는데 무슨 풍월이 봄을 알려주네’ 이런 가사하며! 정말 매력 있어요. 심플하고.
▷이런 작업 과정이 외국에서도 종종 있다면서요?
▶외국에서도 이런 작업물들이 많아요. 팻 메스니도 그렇고요. 뮤지션이 지방에 가서 고유한 느낌을 받고 연주를 해서 곡을 만드는 작업들 말이죠.
▷특정 지역이 주는 영감을 곡으로 표현하거나 지역 민요를 새롭게 차용, 변주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차용’이란 표현이 적당할까요?
▶정확히는 발췌라고 할 수 있겠죠.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있었지만, 중요한 작업은 끝마쳤어요. 그렇지만 다시 제대로 녹음을 해야죠. 올림픽 앨범에 제 정선아리랑은 들어가지 않아요. 곧 나오는 새 앨범에 최종 버전이 수록될 겁니다. 여기서부터 모험이 시작되는 거에요. 우리 고유의 가락에서 좋은 것을 잘 뽑아내면 여러 의미있는 결과가 남을 겁니다. ‘이런 창법을 구사 했더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 잘 되더라’ 이런 선례가 남겠죠. 대중문화는 결국 대중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 결과여도 충분히 보람이 있죠.
▷곡에서 애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서에 한이 많을수록 리듬을 많이 써야 합니다. 이번 정선아리랑에도 이런 정취가 곳곳에 배여있죠. 그래서 비트와 리듬에 신경을 썼고요.
▷올림픽 헌정곡이라면 밝은 느낌의 노래를 떠올릴 텐데, ‘좀 어둡다’는 견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곡이라고 봐요. 인터넷으로 이 곡이 알려졌을때, ‘한국에서 이런 느낌의 노래가 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요소가 많다고 보거든요. 우리 전통 음악은 확 꺾어지고 쳐지면서 그 안의 리듬이 있죠. 한국 음악은 이게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월등합니다. 그럼에도 왜 대중화되지 못했냐면, 결국 ‘규격화’의 문제일겁니다. 그게 잘 안 되어 있으니까요. 우리 음악은 계속 마디가 바뀌면서 자유자재로 전개됩니다. 대중음악이라하면 결국 ‘규격’이 어떤가라는 문제거든요. 규격과 균형을 잘 써야 해요. 그런데 한국 전통 민요는 그렇지가 않아요. 산에 들어가서 한 곡 가지고 수개월씩 본인이 연구해서 만들어져 이어지고요. 장점이자 확장의 어려움이기도 한 거죠. (계속)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