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글을 올린 사람은 바로 서지현 검사. 서 검사는 해당 글을 통해 2010년 서울 북부지검에서 근무하던 당시 법무부 장관을 수행했던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야기를 고발했습니다. 서 검사는 "10월 어느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간부로 있던 안 검사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며 "그 자리에는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던 이귀남 전 장관을 비롯한 다른 검사들도 많았다"고 털어놨죠.
아무도 서 검사를 감싸는 사람이 없었고, 서 검사 또한 모두가 외면하는 모습에 당시 대놓고 항의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소속청 간부들의 사과를 받긴 했으나 안 검사에게선 사과를 비롯한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서 검사에게 돌아온 것은 사과가 아닌 사무감사와 유례없는 인사통보였죠. 서 검사는 사무감사에서 수십 건의 지적을 받았으며 지적을 이유로 검찰 총장의 경고를 받았죠. 그리고 또 그 경고를 이유로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서 검사는 같은 날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해 자신이 올린 글에 관해 인터뷰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서 검사는 출연 이유에 관해 자신 외에도 검찰 조직 내에서 성 관련 범죄가 만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사과 한 마디 없는 안모 검사의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간증을 하러 다닌다더라"라고 말한 서 검사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죠.
또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피해를 입지 않고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며 피해자가 입을 다무는 순간 검찰이라는 조직의 개혁은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밖에도 "인사 발령의 배후에는 안태근 검사가 있다는 것을, 성추행 사실을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 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도 말했습니다.
이후 가해자라고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안 전 검사는 이날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다"면서도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으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안 전 검사는 "그 일이 검사 인사나 사무 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죠. 또 해당 사건을 덮은 사람으로 지목된 최교일 전 국장은 "전혀 기억이 없다"며 "왜 나를 끌어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안 전 검사와 최교일 의원의 대응은 일관적인 데다가 서 검사가 인터뷰 전 동료들에게 들었던 조언과 일맥상통합니다. 서 검사의 동료들은 사건 당시 "(상부가)너 하나 바보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지금 떠들면 그들은 너를 더욱 무능하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하네요. 또 서 검사는 성추행 사실을 법무부에 알렸지만 "검사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으라"라는 싸늘한 반응만 받았다고 합니다. 이 반응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서 검사가 올린 글에 대해 대검 감찰본부(정병하 본부장)는 "게시글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비위자가 확인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검의 반응에도 의문만 떠오릅니다. 8년입니다. 서 검사가 어떤 이의 협조도 얻지 못한 채, 결국 홀로 나서기로 결심한 세월은 그렇게나 흘렀습니다. 그 세월 동안 검찰 조직에서 서 검사는 자신 말고도 수많은 동료들이 성범죄를 겪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검찰. 대한민국 최고의 사법기관이며 공공조직이지만, 공명정대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는커녕 그 안에서 나는 고통의 소리마저 외면하는 조직. 이미 검찰은 법의 잣대 이전에 자정 능력조차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