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조용하고 치열한 여정 ‘소공녀’

[쿡리뷰] 조용하고 치열한 여정 ‘소공녀’

기사승인 2018-03-16 00:07:00

‘소공녀’(감독 전고운)는 현실을 상징으로 풀어낸 영화다. 영화는 한 모금의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집을 포기하는 주인공의 눈으로 다양한 인물을 비추며 바로 지금 서울에서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이솜)는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대다수 인물이 내 집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취향을 포기할 때, 미소는 자신의 기호를 지키기 위해 과감히 집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선다.

3년차 프로 가사 도우미 미소에겐 새해를 맞아 고민이 생겼다. 집세를 비롯해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와 위스키값은 모두 올랐지만, 일당만은 그대로인 것. 빚지는 것이 싫어 하루 버는 만큼 쓰는 미소는 고민 끝에 방을 정리하고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미소가 찾아가는 친구들은 총 다섯 명이다. 베이스를 쳤던 최문영(강진아), 키보드 정현정(김국희), 드럼 한대용(이성욱), 보컬 김록이(최덕문), 기타 최정미(김재화)… 반가운 재회도 잠시.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미소를 맞이한다.

더 큰 회사로의 이직을 꿈꾸는 최문영은 링거액을 맞으며 일하고, 주부가 된 정현정은 음식을 못해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무시당한다. 한대용은 결혼하고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얼마 안 돼 이혼하고 매일을 눈물로 지새운다. 밴드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 김록이는 여전히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뜨겁게 기타를 치던 최정미는 부자 남편과 결혼해 과거를 숨긴다.

미소의 친구들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와 닮았다. 그들의 욕망은 매우 현실적인 보통의 것이다. 미소는 각각의 고민을 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한 명씩 마주하며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영화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공감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공녀’의 기획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주인공 미소는 이분법적으로 분류되는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움직이며 취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누군가에 의해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 인물이다. 성녀 혹은 악녀, 영화적 도구에 지나지 않은 여성 캐릭터에 지친 관객이라면 미소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다.

인물의 상징성과 관계가 중요한 이 영화의 결이 매끄러운 것은 배우들의 공이 크다. 미소 역을 맡은 이솜을 비롯해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각각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음악을 비롯한 영화의 면면이 모나지 않고 조화롭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야기가 끝나도 영화 속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달라지는 것은 미소의 머리카락 색과 미소가 사랑하는 것들의 가격뿐이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는 캐리어를 끌고 서울을 누비던 미소의 여정이 조용했지만 치열했다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그 조용하고 치열한 여정이 미소만의 방식으로 계속되리라는 것도. 오는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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