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망했던 장애인 스키 선수, 어쩌다 ‘밥벌이용’ 전락했나

[기획] 유망했던 장애인 스키 선수, 어쩌다 ‘밥벌이용’ 전락했나

스키협회·기관, ‘한 몸’ 돼 문제 축소·은폐 의혹… 스키협회, "문제 없다"

기사승인 2018-04-04 05:00:00

‘인간승리’로 표현되는 패럴림픽은 정말로 감동으로만 똘똘 뭉쳐있을까. 엘리트스포츠 출신 A씨는 하반신 마비 사고를 당한 뒤 평창 패럴림픽 준비를 어럽게 결심했지만, 대한장애인스키협회의 안일한 행정에 시달리다가 끝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신인선수팀 지도자로 일한 B코치가 A씨를 사실상 ‘밥벌이’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씨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협회가 지도자 선임과 선수 선발에 있어서 전문성보다는 학연·지연에 기대 행정처리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논란이 된 신인선수팀 소속 B코치는 협회에서 징계가 논의되자 돌연 사직서를 제출해 이를 무마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창 패럴림픽 국가대표 감독으로 돌아왔다. 협회가 ‘회전문 인사’를 한 셈이다.

▶경과는 이렇다

엘리트스포츠 국가대표 후보선수단에서 활동하다가 2013년 3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A씨는 같은 해 12월 대학병원의 권유로 장애인스키협회와 접촉한 뒤 장애인 알파인 스키(좌식) 선수 활동을 결심한다. A씨는 2014년 10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지만 실제 훈련기간은 연 1개월에 불과했다. 2014년에는 대표팀 지도자였던 모 감독이 비리건으로 해임되며 이듬해 10월까지 훈련이 중단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A씨가 받은 진짜 고통은 이후부터다. A씨는 2015년 11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지만 잘 맞지 않는 장비를 사용하다가 늑골 골절, 어깨 부위 손상 등 3차례 큰 부상을 입었다. A씨는 협회에 장비 교체를 요청했지만 “스펀지와 벨트를 꽉 묶어 장비를 고정하라”며 거절당했다. 

그 사이 전담지도자였던 B코치는 휠체어 스포츠 댄스 선수 활동을 이유로 잦게 훈련장을 비웠다. B코치는 장비구입비 명목으로 나온 예산 중 2500만원 상당을 본인 장비 교체에 사용했다. 그는 훈련장에서 금지된 음주를 하는 등 선수 관리에도 소홀했다.

2016년 4월부터 A씨는 장애인스키협회측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돌아온 건 ‘보복 행정’이었다. 협회는 전담지도자를 바꾸겠다 약속했다가도 시즌 훈련이 시작된 9월경 B코치를 그대로 신인선수팀에 배정한 뒤 A씨에게 훈련 참석을 통보했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협회는 “근거 없는 비위사실로 협회 및 지도자를 비방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훈련에 불참하는 등 선수로서 본분을 다 하지 않았다”며 A씨에게 선발 취소 징계를 내렸다.

협회는 상벌위를 통해 B코치 징계도 함께 논의했지만 B코치가 사직서를 제출하자 “징계조치 없음으로 결정한다”면서 없던 일로 묻었다. 그리고 2017년 6월 B코치는 평창 패럴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된다.

▶“문제 제기하면 ‘네가 감히?’로 보복”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B코치는 모 종목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반면 A씨는 끝내 선수로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A씨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상위기관인 장애인체육회와 문체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가 제출한 문서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문체부는 ‘A씨가 자필로 작성한 민원 관련 문서가 없어졌으니 파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고, 장애인체육회는 ‘면담에서 하소연을 들어준 것으로 민원이 종결된 줄 알았다’며 해당 민원을 일축했다. 2016년 말부터 본격화된 A씨의 민원은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보 상태다. A씨는 “스키협회와 상위기관들이 ‘한 몸’으로 문제를 축소·은폐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장애인 스포츠는 프로 스포츠에 몸담았던 선수 출신을 우대한다. 프로 선수급으로 몸이 만들어져있는 데다가 훈련 방식에도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A씨에게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기량을 더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고, 한계치 또한 높게 잡을 수 있다.

A씨는 처음 선수 제안을 받을 당시 장애인스키협회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기회와 전지훈련 및 장비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훈련장에 발을 디디자 협회는 올림픽 메달 경쟁력보다 ‘자기 사람 살리기’에 초점을 맞췄다. A씨는 “협회나 상위기관에 문제를 제기하면 ‘네가 감히?’라는 느낌의 보복이 들어왔다. 나는 그저 코칭스태프의 밥벌이일 뿐이었다. 훈련 당시 선수들과 ‘낙인이 찍히면 더 이상 운동을 못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스키협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전문 인사 논란에 대해 장애인스키협회 관계자는 “국가대표 감독은 공고로 뽑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대표 지도자는 범죄경력이 있을 때 가장 문제가 된다. B코치는 기준표에 근거해 결격사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B코치가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된 경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몸에 맞지 않는 장비로 부상에 시달렸던 A씨의 사연에 대해 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워낙 (장비가) 고가다보니 신인선수에게 처음부터 풀 세팅을 해줄 순 없었다. 일반적으로 자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지도자라도 장비가 있어야 선수를 돌볼 수 있다. 당시 선수 장비 교체에 대해 뚜렷한 요청이 없어 B코치 장비를 교체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B코치의 훈련장 음주 의혹에 대해서는 “분명 금지된 사항”이라는 전제를 깐 뒤 ”(당시 훈련장에 있던) 선수, 지도자, 스태프에게 확인했지만 술을 엄청 마신 건 아니고 밥 먹으면서 1-2잔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추운 곳에서 운동을 하다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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