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UEFA)은 챔피언스리그(UCL) 역사를 바탕으로 AS 로마가 UCL 4강에 오를 확률이 16.7%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팀간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은 산술적 데이터다. 로마의 상대는 FC 바르셀로나였다. 전문가들은 로마의 4강 가능성을 0%에 가깝게 책정했다.
로마는 11일 오전(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2017-2018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2차전을 치렀다. 1차전에서 4-1로 패한 로마는 2차전에서 무실점 3점차 승리를 거둬야 했다.
로마는 기적에 도전했다. 포메이션도 색달랐다. 에우제비오 디 프란체스코 감독은 이번 시즌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중원에 5명이 섰는데, 수비 상황에서 미드필더가 내려와 5백을 만드는 변형 전술이다. 공격진은 엘 샤라위 대신 쉬크가 출전해 변화를 줬다. 바르사는 1차전 대승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메시, 수아레즈는 물론이고 이니에스타, 라키치티, 부스케츠, 피케 등 올 시즌 베스트 멤버들이 총 출동했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임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이탈리아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는 경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킥오프 전부터 경기장에 울려 퍼진 로마 응원가는 홈 선수에겐 찬가로, 원정 선수에겐 악몽으로 뇌리에 스며들었다.
대승의 원동력은 에딘 제코의 이른 선제골이었다. 전반 6분 중원에서 길게 찔러준 침투패스를 제코가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1-0을 만들었다. 제코는 곧장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달려갔다. 아직 2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르사도 특유의 간결한 패스를 바탕으로 로마의 골문을 노렸다. 프리킥찬스를 비롯해 득점찬스가 나왔지만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로마가 들고 나온 전술이 들어맞은 셈이다.
후반 13분 제코가 만든 페널티킥을 데 로시가 성공키며 2-0이 됐다. 이제 한 골만 더 넣으면 로마가 4강에 진출하는 상황이 됐다. 로시는 골을 넣자마자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뛰었다. 로시는 지난 1차전에서 자책골을 넣은 마음의 짐이 있다.
경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바르사도 1골을 더 허용하면 다 잡은 4강행을 놓치게 생겼기에 다소 거칠게 경기에 임했다.
심판이 바빠졌다. 크고 작은 몸싸움에 심판의 휘슬이 쉴 새가 없었다. 로마가 엘 샤라위를 투입하며 득점 의지를 불태웠다.
후반 37분 승부를 결정짓는 득점이 터졌다. 지난 1차전에서 자책골로 고개를 숙였던 마놀라스가 마음의 짐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골을 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짧게 올라온 공을 마놀라스가 방향을 살짝 바꾸는 감각적인 헤더로 팀 3번째 골을 넣었다.
더 이상 공을 들고 하프라인까지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마놀라스가 벤치를 향해 달려갔고, 필드 선수와 코칭스태프, 후보 선수들이 한 데 뒤엉켜 기뻐했다. 로마 감독은 선수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아직 경기는 8분가량 남아있었다.
급해진 바르사가 공격을 강화했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바르사가 1골을 넣으면 4강에 오르는 팀은 원정팀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경기장에서 이들은 기운을 내지 못했다. 바르사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낸 로마가 결국 4강행에 성공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사진=AP, 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