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힘' 보다 '전문성' 내세워야할 의사들

[기자수첩] '힘' 보다 '전문성' 내세워야할 의사들

기사승인 2018-05-24 05:00:00
협상의 전략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신이 가진 힘이나 권위, 권력 등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해 상대가 운신할 폭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주로 북한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핵위협’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하책으로 평가된다.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를 강압적 방식으로 줄이기 때문에 상대의 두려움이나 현실인식을 자극해 반발하거나 앙심을 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하책을 택했다.

지난 5월 20일, 대한의사협회는 두번째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의사협회는 당일 최대 5만2000명의 의사들이 서울시청 맞은 편 덕수궁 대한문에 모여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 반대기치를 높이 올렸다며 “세를 과시했다”고 자평했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차 총궐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밀도 있게 모여 정치권과 사회에 의료계의 정당한 요구사항을 정확히 제시했다”면서 “오늘의 성공은 25일 재개되는 의정협의에서 높은 협상력을 발휘하며 의료계의 의견을 관철시킬 힘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정말 그럴까? 당장 의사협회에서 추산한 5만2000명이라는 집회인원 추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차 총궐기대회 당시 촬영된 사진과 비교해 집결인원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고, 현장에서의 밀집도 또한 지난 궐기대회보다 느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분명 내일(25일) 오후에 진행될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 간 협상은 1달여간 끊어진 대화를 이어나갈 분수령으로 긍정적 결과가 예상된다. 다만 복지부가 대화 단절로 인해 정책시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과 국민적 바람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집회 참석인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의사들의 뜻이 과거의 강경일변도에서 ‘단계적, 점진적 보장성 강화’라는 협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정부에 전해졌고, 정부 또한 정책의 수행을 위해 협상을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다른 말로 의사협회가 ‘세력(힘)’을 과시할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힘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집회를 지켜본 국민들의 반감을 사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돈을 벌기 위해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보건의료에 있어서 최고 전문가라는 점을 활용해 정부가 반박할 수 없는 의학적 근거나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숭고한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가 스스로를 이익에 미쳐 거리로 나선 장사치가 될 필요는 없었다는 평가다.

의사들이 어떤 협상방식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 속단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의사들 입장에서 볼 때 세를 과시하는 방식보다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한 의협 관계자는 이와 같은 지적에 “집회인원을 뻥튀기해서 발표할 필요까진 없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의료의 전문가로써 적정수가나 필수의료, 급여화가 필요한 비급여 항목에 대한 의학적 근거와 논리, 의견을 정리·개발해야한다는 지적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디 이 관계자의 말이 개인의 의견이 아닌 단체의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이행되길 기대해본다. 간혹 의사들은 “의사도 국민”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처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전문가의 머리로 판단하고 설득하길 기다려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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