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농구코치가 체육관 걸어 잠근 진짜 이유

[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농구코치가 체육관 걸어 잠근 진짜 이유

기사승인 2018-07-21 00:21:00

이 칼럼은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이 영화와 드라마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는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_편집자 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리치먼드 고등학교. 이곳에 새 농구 코치 켄 카터(사무엘 잭슨)가 부임합니다. 선수들의 상황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시합 중에 개인플레이를 펼치다 경기를 망치기도 하고,  시합 패배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죠. 이렇듯 절망적인 팀의 상황을 본 카터 코치는 그래도 농구를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부임 첫날 카터 코치는 학생들에게 계약서를 내밉니다. ‘학점 평점이 2.3을 넘어야한다’, ‘수업에 들어가 앞자리에 앉을 것’, ‘시합이 있을 때는 넥타이를 매야한다’…. 카터 코치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더 이상 팀에서 농구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반발은 거셌습니다. 일부는 팀을 나갔고, 남은 선수들도 불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카터 코치가 이런 강수를 둔 것은 선수들이 농구를 통해서 인생의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랬던 겁니다. 

카터 코치의 지도 아래 리치먼드 고등학교 농구팀은 서서히 변해갑니다. 강도 높은 체력 트레이닝과 체계적인 전술 훈련으로 실력을 키워 다른 학교 농구팀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학업 성적은 여전히 미흡했습니다. 선수들은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고 성적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죠. 카터 코치는 선수들의 학업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교장에게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합니다. 

교장은 “농구팀 선수의 1/3이라도 졸업하면 성공”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도 그럴게 학교의 평균 졸업률은 절반에 그쳤고 6%의 학생만이 대학에 진학을 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선수들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카터 코치의 목표가 허황된 꿈으로 보였던 건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어쨌거나 농구팀은 연일 경기에서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16연승을 달성합니다. 농구 실력은 나날이 향상됐지만 학업 성적은 도무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죠. 선수들도 연이은 승리에 도취되어 카터 코치와의 계약서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 

마침내 카터는 극약 처방을 내립니다. 체육관을 폐쇄하고 모든 선수들의 성적이 C+를 넘기기 전까지는 농구 연습뿐만 아니라 시합 참여까지 중단하겠다고 발표해버린거죠. 선수들은 몹시 당황했지만 이내 코치의 뜻에 따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발은 일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농구팀을 시합에 출전시키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결국 예정돼 있던 시합은 몰수패를 당하고 언론까지 학교를 찾아와 카터 코치를 괴롭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사람들은 카터가 운영하는 상점에 돌을 던지고 자동차에 침을 뱉으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학교 위원회는 카터 코치에게 체육관 폐쇄 조치 해제를 요구했고, 카터 코치는 이런 결정에 반발해 코치직 사임으로 맞섰습니다. 

이후 카터 코치와 선수들에겐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농구를 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학부모와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농구를 못하게 한 농구 코치. 누가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한 걸까요? 


2005년 개봉한 ‘코치 카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팀의 학업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실제로 체육관을 폐쇄해버린 코치의 결정은 실제로 미국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농구선수들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이 결과는 당시 학교의 평균 졸업률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선수 중 몇몇은 대학 팀에 스카우트되어 학업을 계속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은 그들의 삶에서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시합에서 한 경기를 더 이기고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훈을 얻었을 테죠. 

영화에서 카터 코치와 학생들이 서로 신뢰를 쌓으며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치료를 위한 ‘동맹’을 맺고 완치라는 공통의 목표를 이뤄가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환자와 의사는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지, 또한 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때때로 치료 과정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지 상의하기도 하죠. 그렇게 함께 달성한 성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만큼 빨리 호전되지 않자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증상이 나아진 것에 만족해 너무 빨리 치료를 중단해버리는 환자도 있습니다. 치료를 중단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환자도 있죠. 

가장 답답한 경우는 환자 본인이 치료를 유지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약을 끊을 것을 요구할 때입니다. 부모와 친지, 지인들은 정신과 환자의 고통을 의지 부족으로 생긴 문제로 치부하고 환자를 몰아붙입니다. 환자-의사 사이에 꾸준한 대화와 교감으로 진행하던 치료 과정을, 제3자가 잘못된 상식을 근거로 중단시키려고 할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정진한다는 건  냉철한 판단력과 굳은 의지, 그리고 성실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카터 코치가 그의 선수들을 존경했듯, 정신과 의사인 저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환자들은 존경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영원한 승자일 테니까요.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 eastblue0710@gmail.com

eastblue07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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