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용정보의 가치가 결제할 때마다 달라진다?

[기자수첩] 신용정보의 가치가 결제할 때마다 달라진다?

기사승인 2018-09-21 08:30:00

지금 시대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이념 중 하나는 ‘자본주의’다. 사실 자본주의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동의하는 것은 경제체제의 한 축으로 공동생산, 공동소유라는 사회주의 경제관념의 대척점에 자본주의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모든 재화에는 가격이 매겨지며,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이 생산되고, 노동력이 상품화되며, 생산은 전체로 볼 때 무계획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자본주의를 꼽는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해 인간이 위로 올라가려는 향상성을 자극하고, 통제되지 않는 자본축적에 대한 욕망이 때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에서 불법과 비극이 연출되는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접할 때면 당사자들을 손가락질하며 잘못했다고 비난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질서를 파괴하거나 교묘히 활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타인의 것을 빼앗고, 힘으로 불합리함을 강요하는 등의 행태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당국이 침체된 서민경제와 어려움에 직면한 영세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밴(VAN) 수수료 체계 개편’을 포함한 카드수수료 개선책도 이런 측면에서 잘못됐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주도하고 관계부처가 상의해 지난 6월 발표한 이번 ‘밴수수료 체계개편’은 카드결제 시 승인 혹은 매입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신용정보를 전달하는 밴사에게 카드사가 지급하는 비용을 과거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결제건당 일정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봤다. 동일한 매출총액을 달성해도 결제건수가 많아 수수료를 더 내야하기 때문이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산간 태우려는 격이다. 자본주의의 가격결정의 원칙을 흔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등가의 원칙이 적용된다. 동일한 가치를 가진 상품에 동일한 가격이 책정되고 이를 물물교환 하는데서 자본주의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번 밴 수수료 체계 개편은 이러한 원칙을 무시했다. 개인의 신용정보라는 하나의 상품가격이 매번 달라져버렸다.

개인의 신용정보가 카드를 사용해 1만원을 결제할 때는 100원, 10만원을 결제할 때는 1000원이 되는 식의 상황이 벌어졌다. 개인의 신용정보에 대한 가치가 달라지지 않음에도 편의점에서 음료 하나를 살 때와 대형할인마트에서 장을 볼 때 다른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심지어 전자상거래가 정착되며 사용자의 신용정보를 조회하고, 이를 가맹점에서 확인하는 절차가 기계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단가는 회선관리비용과 인건비 정도가 전부다. 과거 종이로 이를 확인하고 관리하던 때와는 소요비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 종이를 사용하던 시절 밴 수수료는 건당 240원 가량이었지만 지금은 70원 가량에 불과했다. 이처럼 단가는 통신기술과 장비의 발전으로 인해 낮아질 뿐 고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가맹점이 부담하는 가격은 소비자가 결제하는 금액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합리적이진 않다.

자본주의의 원칙상 상품의 가격은 생산원가와 운송비, 수수료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상품 하나를 결제할 때와 다른 상품과 함께 결제할 때 금액이 달라진다면 소비자들이, 가맹점주가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카드사와 밴사의 유착관계나 이윤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등의 배경은 뒤로하고 금융당국이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율 부담을 낮춰주겠다며 경제원리, 자본주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밴수수료와 신용정보의 원가를 재산정해 적정가격을 가맹점주 등이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고, 총매출에서 카드수수료율을 정할 것이 아니라 순이익 등을 따져 정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보다 합리적이고 합당해 보인다. 부디 금융당국이 사기업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경제와 사회가 유지·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정책으로 펼쳐주길 바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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