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유다인)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그려 팔아내는 작가가 아니다. 남의 작품을 그대로 베낀 다음 ‘차용’이라고 말하며 그것이 현대미술이자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우정에 관해 세상 사람들은 표절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어쨌든 작품은 팔린다. 우정은 스스로 “예쁘고, 욕 먹는 재주가 있다”고 말하고 다닐 만큼 끄덕없어 보인다. 큰 미술잡지의 전문 기자인 형중(심희섭)과 동거하고 있기에 안 좋은 기사가 날 염려도 없다. 권위 있는 미술관에서 작품 전시 제의가 오고, 미술관의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과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하듯 바람을 피우는 우정.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의 옛 친구 탁소영(옥자연)이 귀국하며 상황이 꼬인다. 소영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나머지 영국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력도 있을 정도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캐릭터. 우정이 살고 있는 형중의 집에 자신의 남편이 올 때까지만 신세를 진다고 말하면서도, 우정에게 “네 남자친구 마음에 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우정은 그런 소영을 싫어하면서도 집 밖으로 쫓아내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는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정은 다른 작가와의 표절 소송에서 패소한다. 당장 배상금 2000만원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과 소영, 형중과 진호의 관계가 얼키고 설키며 우정은 극한까지 몰린다.
영화 ‘속물들’(감독 신아가, 이상철)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더없이 현실적인 인물들로 가득차 있다. 사람의 인생은 연속적이다. 딱 부러지는 단편적인 일로 끝나기보다는 대부분의 관계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한없이 늘어진다. ‘업보’라는 말은 이런 인생의 연속성을 표현하기에는 단면적이며, 누가 봐도 ‘나쁜 년’인 우정은 극중에서 가엾어지기도, 때로는 죽이고 싶어지기도 한다.
가변적인 것은 우정뿐만은 아니다. ‘미친 년’으로 극중에서 표현되는 소영 또한 우습기 짝이 없는 돌발행동들을 일삼지만 그 근원지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다. 표정 없이 타인들을 관찰하는 형중은 소영의 말마따나 ‘한 칼’이 있고, 다정하고 진실된 듯 한 진호는 상황에 따라 어느 것이 진심인지 관객을 헛갈리게 한다. 모든 인물의 결은 다채롭고 마지막에 완성되는 몽타주 한 장은 그 인물들을 ‘속물들’로 규정하며 답을 낸다.
신아가와 이상철 감독은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상황을 컨트롤하려 드는 사람들을 애처롭고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지난 6일 부산 센텀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속물들’ GV에서 신아가 감독은 “내 주변에도 소영 같은 친구가 있었고, 개인적 경험들이 녹아있다”며 “본래 주인공은 소영이었으나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우정으로 바뀌었다”고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극적이면서도 공감가는 서사는 다른 이야기에서 찾아볼 필요 없이 모든 사람들의 안에 있다는 것을 ‘속물들’은 여실히 증명해낸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