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아파트 시공에 있어서 원가공개 할 것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치솟은 집값 거품을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다.
이와 관련 건설사들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건설사들이 원가를 부풀려 집값상승의 주도하는 것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건설사들은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이 땅값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건설업계에 한해서만 원가공개를 하라는 식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와 함께 원가공개를 하게 되면 건설업 침체가 닥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업계 특성상 원가공개의 피해가 하청업체에 전가될 수 있어서다.
이에 건설사들은 아파트 원가공개를 정부 및 지자체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업계가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SH 원가공개…시민단체 환영
최근 서울시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서울주택토지공사(SH)가 분양한 (임대)아파트의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분양원가 공개를 결정한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다.
시민단체는 이같은 서울시의 SH아파트 원가공개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원가공개를 하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공급할 수 있고, 이는 투기세력을 차단해 집값 안정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최승섭 팀장은 “강남 개포, 목동, 상계 개발 당시 정부와 서울시가 분양원가 공개를 채택해 주변 시세의 60% 수준으로 싸게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집값 안정 효과를 거뒀다”며 “투기세력까지 차단되면 서민들의 내집마련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건설사 항변 “왜 우리만”
반면 건설사는 다른 산업군과 형평성을 들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산업군에 있어서 원가공개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건설업계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식의 시장 개입은 불공평하다는 입장이다.
A건설 관계자는 “건설사에게 원가공개하라는 말은 공사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의미인데, 이는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맞지 않음과 동시에 불공평한 요구다”라며 “자유경쟁시장에서 모든 걸 공개하고 일정 수준의 가격을 형성토록 하는 건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가공개가 이뤄져야 한다면 모든 제품에 적용되야지, 건설업계에만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B건설 관계자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원가공개를 하라는 요구는 결국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원가 공개 집값안정화 수단 아냐
건설업계는 원가공개가 반드시 집값 안정화로 이어질 것이란 의견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투명성이 강화되면 시공 과정에 있어서 더욱 신중해지겠지만, 집값 안정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B건설 관계자는 “아파트값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가장 큰 이유는 땅값이고, 그 외에도 물가상승 등과 같은 복합적 이유가 있다”며 “문제는 이를 시공사가 원가공개를 하면 아파트값이 낮아질 거라는 주장은 건설사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말했다.
C건설사 관계자도 “집값은 시장 논리에 입각해 수요공급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원가공개를 한다고 해서 집값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며 “원가공개가 이뤄지는 추세라면 차라리 공개돼서 건설사가 큰 마진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음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또한 분양원가를 공개해 가격이 낮아질 경우 시세차익을 노린 로또청약 부작용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D건설 관계자는 “원가공개를 해 분양가가 낮아지더라도 로또당첨이라는 말이 많은 분양시장에서 투기는 더욱 과열될 것”이라며 “집값을 잡기 위해 시행한다는 원가 공개가 주택공급 감소와 로또청약으로 인해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원가 공개하면 건설업 위기 닥친다
원가공개는 건설사별 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 의욕을 떨어트리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하청에 하청을 주는 건설업계 특성상 원가공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하도급업체들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D건설 관계자는 “원가 관련 업체 입장에선 일종의 경쟁력인데, 원가를 공개해버리면 이는 기업의욕을 떨어트리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건설 관계자도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듯 건설사도 혼자 모든 걸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도급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며 “만약 모든 원가를 전부 공개해버린다면 건설사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페인트, 자재 등을 제공하는 하청업체들부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제적인 방법보다 인센티브 등 업계 자율에 맡겨야
건설사들은 무조건적인 원가공개보다 업계 자율적인 개선에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원가공개를 하는 기업에 한해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거나, 소비자가 원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건설사와의 접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B건설 관계자는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추구인데, 이를 막고 원가 그대로 하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원가공개를 하는 기업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주던지, 아파트 구매자들이 원가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도록 건설사와의 접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