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남 기자의 ‘아기 목욕’ 대리 체험기

독신남 기자의 ‘아기 목욕’ 대리 체험기

여가부 공동 육아 권장 배경, 한국 가사분담률 최하위 기인

기사승인 2018-11-09 00:30:00

발단은 여성가족부의 ‘초보 아빠수첩’이었다. 

여가부는 2016년부터 어린 자녀를 둔 초보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를 장려하기 위해 육아정보가 담긴 소책자를 전국 보건소와 산부인과에 배부하고 있다. 

‘기저귀 갈기’, ‘이유식 먹이기’, ‘신생아 목욕시키기’와 같은 3대 ‘난제’ 속에서 그나마 독신남인 기자에게 목욕시키기가 제일 만만해보였다. 후배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훈이 말야. 내가 목욕을 한번….” 지훈이는 후배 녀석의 아들 이름이다. “안돼요!”

녀석은 펄쩍 뛰었다. 거듭 조심해서 목욕을 시키겠다고 했지만, 설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형, 그렇게 안 봤는데 막무가내네. 그러다 실수해서 아기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거에요? 네? 말해 보라고요!”

녀석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별수 없이 ‘기사는 킬이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녀석이 말했다. “정 그러면 우리 집 고양이라도 목욕시켜보던가요. 매뉴얼대로.” 

털이 많고, 발톱이 긴 것만 빼면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대안’이라 여겼다. 사실 생각이랄 것도 없이 마음이 바뀔까 싶어 녀석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인 것이었다. 실수였다. 한 시간 뒤 녀석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타났다. 녀석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동안 기자는 여가부의 ‘초보 아빠수첩’에 맞춰 이런 저런 준비를 했다. 

여가부의 ‘신생아 목욕시키기’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1. 수건, 세정제, 보습제, 기저귀, 갈아입힐 옷 등을 미리 준비하고 물도 받아 놓습니다. 2. 가제 손수건에 따뜻한 물을 묻혀 눈, 코, 귀 순서로 조심조심 닦아줍니다. 3. 아기의 머리를 감길 때는 손에 물을 묻혀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머리카락을 적시고 두피를 살며시 마사지하면서 감깁니다. 이렇게 하면 아기의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4. 욕조에 아기를 내려놓고 가슴, 배, 목, 겨드랑이, 팔과 다리, 등 엉덩이 순으로 몸을 씻겨줍니다. 이때 아기가 안정감을 느끼도록 눈을 마주치며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5. 목욕이 다 끝나면 헹굼 물을 미리 준비해 뒀다가 아기를 옮겨 몸 전체를 재빠르게 씻어줍니다.      

잘될 턱이 없었다. 고양이는 욕조에 들어가기 전부터 발톱을 세우고 기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발버둥쳤다. 두 시간여의 사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자의 모습을 후배 녀석은 인증 샷을 찍으며 놀려댔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를 목욕 시키며 신생아 목욕을 대리 체험해보겠다는 어리석음과 어설픈 접근에 대한 부끄러움은 기자의 몫일 것이다. 

◇ 전쟁 같은 육아, 엄마 혼자 감당하는 가사 노동

종영된 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잔뜩 성이 난 딸에게 아빠는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대사를 곱씹으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지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이다. 초보 아빠만 있는 게 아니라 초보 엄마도 있다. 

초보 엄마는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등의 ‘중노동’에 가까운 육아의 전 과정을 그저 감당하고 있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육아 및 가사를 여성의 몫으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하다.   

여가부가 초보 아빠수첩을 배포하면서까지 공동육아를 장려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가사 분담률이 전 세계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OECD 회원국 중 한국 남성들의 가사분담률은 16.5%로 꼴찌다.   

현재 전국 보건소와 국민민원창구 등에서 ‘초보 아빠수첩’을 구할 수 있다. 여가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는 방법도 있다. 초보에서 완숙한 아빠가 되는 ‘매뉴얼’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만 쉽게 바뀌지 않는 건 초보 아빠들의 의지이고, 사회 분위기이지 않을까?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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