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에게서 ‘SKY캐슬’ 김주영의 그림자가

원희룡 지사에게서 ‘SKY캐슬’ 김주영의 그림자가

기사승인 2019-02-20 14:28:45

우리 교육체계의 민낯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선생(김서영 분)을 꼽는다. 

철저한 무표정과 확신에 찬 중저음의 단호한 말투, 논리적인 언변과 반듯한 몸가짐 하지만 그 속에 가려진 연약함과 상처, 내면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독심까지. 복잡하지만 마음을 끄는 매력의 악역에 인기의 척도라는 각종 패러디와 속칭 짤방(화제가 되는 장면을 짧은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재작한 영상 등)이 쏟아지는지도 모른다.

극 중 김주영은 학창시절 자신보다 성적이 나빴던 친구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학교수라는 꿈을 먼저 이뤘다는 열등감에 매몰된 여성이자, 열등감을 감추고 변명하듯 학대에 가까운 영재교육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엄마였다. 딸에게 자신을 투영해 동일시하며 딸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는 맹목적인 모습도 보였다.

이런 내면적 연약함은 딸을 자신과 떼놓으려는 남편에게 저항하며 한계까지 몰렸고, 자동차 브레이크 라인을 자르며 선을 넘었다. 자동차 사고를 유발해 남편이 딸을 양육할 수 없도록 막으려던 계획은 딸이 남편과 함께 차에 탐으로써 깨졌고, 삶이 망가졌다. 

이후 김주영은 냉혹한 입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 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흔들리는 강예서(김혜윤 분)를 만났고, 여러 사건 속에서도 예서를 서울대 의과대학을 보내야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교 시험지를 빼돌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챈 김혜나(김보라 분)을 교사해 살해하고, 사건의 본질에 다가선 예서엄마 한서진(염정아 분)에게 빼돌린 시험지를 눈앞에 내놓으며 딸의 미래를 담보로 불법적 행위에 동참하라고 권유한다. 3대째 의사집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과 자신의 미래를 딸에게 걸어왔던 한서진의 절박함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의도다.

이 장면을 보며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시민사회 및 보건의료계의 강한 반발과 도민들로 구성된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국내 첫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의 개설허가라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상대의 절실함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덮고 목표를 이루려는 모습이 닮았다.

실제 녹지국제병원의 모기업인 중국 녹지그룹은 총 사업비 1조5214억원을 들여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대 153만9013㎡(약 46만5550평)에 병원부지를 포함해 호텔, 콘도미니엄, 종합쇼핑몰 등이 들어설 수 있는 종합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중국관광객 유입이 줄어들며 사업이 좌초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공사는 공정률 53% 수준에서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2017년 6월부터 잠정 중단된 상태이며 두산 등의 건설사는 공사대금 1200억원 가량을 받지 못해 병원건물 등 부동산을 가압류한 상태다. 현재 공사재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녹지국제병원 개원문제와 얽혀 자금조달 및 수익성에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련의 상황에서 원 지사가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내국인 진료금지를 전제로 허가한 행위를 두고 영악한 선택이었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일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건부 개설허가라는 카드를 제시해 영리병원에 부정적인 현 정권의 기조를 등에 업고 800억원대의 손해배상책임에서 벗어나는 한편, 지역경제를 걱정하는 모습을 통해 인지도와 지지율을 올렸다는 것.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원희룡 지사 입장에서는 최고의 결정”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여론과 정부기조에 편승해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돼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책임에서 일부 자유로워졌다”고 봤다. 

특히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고, 여타 지역보다 정당이나 이념에서 자유로운 제주에서 죽어가는 지역경제를 살리고 도민을 위해 노력했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사업계획서 승인과정이나 개설허가 과정에서의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개인으로는 실보다 득이 많았던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시민사회단체 한 관계자는 “원희룡 지사가 제 발등을 찍었다”고 평했다. 사업계획서 상의 자금조달방식, 내국인 진료가능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 이를 이유로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 재검토를 요청하거나 개설허가를 불허했다면 원천적으로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녹지그룹의 병원인수 혹은 비영리 전환요구에 대해서도 국민의 건강권과 공공의료의 실현을 목적으로 받아들여 공공병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면 추가적인 예산지출은 있었을지언정 여론이 악화되고 사회적 질타와 녹지그룹과의 소송전 등으로 진흙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풀이다.

이들의 판단을 떠나 원 지사는 드라마의 결말이 어땠는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주영은 예서엄마의 결단으로 범죄사실이 드러나 처벌을 받았다. 영리병원 논란 또한 녹지그룹의 결단으로 행정소송과 사업계획서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들의 결과에 따라 장기적으로 손해배상소송과 헬스케어타운사업의 좌초, 지역경제 쇠락과 지지기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선을 넘는다면 언제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배운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을 그리는 창과 같다고도 한다. 부디 원 지사가 김주영의 전처를 밟지 않길 바란다. 기회가 있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길 희망해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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