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선고에도 불편함 내비치는 의사들

무죄 선고에도 불편함 내비치는 의사들

法, 분주관행 및 감염관리 과실인정… 醫, ‘구조적 문제’ 토로

기사승인 2019-02-22 01:00:00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사망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다행스런 결과라면서도 감염관리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과 ‘분주관행’으로 통칭되는 주사제 소분행위 등에 대한 의료진 개인의 과실을 인정한 점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안성준)는 21일, 2017년 12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4명의 신생아가 연이어 사망한 사건에 대해 7명의 피의자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15일자 스모프리피드 지질영양주사제 투여준비과정에서 오염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고, 16일 피해자들이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과의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만한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설명할 증거도 없다”고 무죄판결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보존재가 함유되지 않은 스모프리피드 지질영양제를 상온에 방치해 균이 증식할 수 있도록 했고, 대용량 주사제를 여러 주사기로 나눠 사용한 분주행위가 감염의 우려를 증가시킨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관행을 개선하려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주사제 준비과정에서 무균환경 조성 및 접촉자 최소화 등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주의의무에 소홀했던 점, 간호사들의 주사제 투여준비 및 투여과정, 처방에 대한 명확한 숙지와 이를 관리·감독해야하는 의무와 책임에도 소홀했다고 인정했다.

로타바이러스 검사결과를 확인하지 않거나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중환자실 내 환아들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 교육 및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 등 감염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주장한 15일 피해 신생아들에게 투여된 지질영양주사제가 간호사들의 분주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고, 균이 정맥주사를 통해 신체에 침투해 패혈증을 유발해 사망했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지만, 개별 행위에 대한 과실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분주를 비롯해 감염관리의 부실문제는 결국 우리나라 보험체계의 문제”라며 “현재 정부는 의사들에게 건강보험 급여기준 등에 의거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가 아닌 적당한 진료를 강요하고 있다. 의사는 이런 현실에서 최상의 진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OECD 평균수준의 재정적 지원과 투자가 선행돼야한다”고 토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정부는 규제와 평가로 감염관리와 임상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근본적으로 환자가 너무 많다. 최근 과로가 문제되고 있지만, 힘들면 몸에 배어있어도 실수나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의료진이 과로하지 않는,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의 경우 2명의 전공의가 응급실과 병동을 오가며 100명의 환아를 봐야했다.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감염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인력이 모자라고 시간이 부족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바꾸긴 불가능하다”고까지 전했다.

법원이 임상현장에서 이뤄지는 통상적 감염관리와 그 책임의 범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분주행위가 잘못됐다는 등 의료계에서 이뤄지는 관행적 혹은 편법적 행위를 ‘과실’로 규정한 것에 대해 보건의료와 의료기관의 구조적, 체계적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국가 차원에서의 고민과 대책이 마련돼야한다는 지적들이다.

여기에 당장의 현실이 아닌 미래의 ‘파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대한의사협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무죄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다행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의료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구속수사를 하고 중형을 구형한데 대해 깊은 회의와 무력감을 느꼈고 더 이상 의료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심각한 자괴감에 빠졌다”면서 “형사적 책임을 지우려는 것은 책임의 한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사고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형사처벌의 두려움에 신생아과 지원 자체를 꺼리고 있다. 중환자실 경력 간호사들의 사직과 이직도 가속화되고, 그 공백은 대학을 갓 졸업한 숙련되지 않은 간호사들로 채워지는 실정”이라며 “국민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의사들이 소신껏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조수진 교수와 전공의 강모씨 변호를 맡은 이성희 변호사 또한 재판부의 신중하고 광범위한 사실조회와 판단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과실을 인정한 부분에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분리하지 않고 의료진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제도적, 의료적, 비용적 논의를 시작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