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보약’이라는데 정작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오죽하면 세계수면학회가 매해 3월 셋째주 금요일을 ‘세계 수면의 날’로 정해 잠을 자야한다고 나설까. 실제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종 설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상태에 대한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전후이며 평일에는 6시간보다 적거나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 또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더구나 이 같은 수면문제가 일상생활이나 삶을 위협해 의료기관을 찾은 수면장애 환자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에 의하면 2013년 38만686명에서 2017년 51만5326명으로 30% 가량 늘었다.
문제는 이들이 전체 수면장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3~10%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에 국내 수면관련 학술단체인 대한수면학회와 대한수면연구학회는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건강한 잠, 건강한 삶’을 주제로 수면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는 “건강한 수면이 소아청소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에서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진단 및 치료, 관리가 중요하다”면서 수면 부족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유병률을 높이고, 우울증과 자살충동 등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사진)는 “수면은 알츠하이머치매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등 뇌 속 대사산물(노폐물)을 청소하는 시간”이라며 “최근 만성 수면부족과 수면장애가 치매발병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혜윤 가톨릭관동의대 신경과 교수는 수면부족이 성장기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 교수는 “각종 전자기기와 학업, 고카페인 음료 등 아이들의 밤을 위협하고 있다”며 “10대는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취침시간이 늦어져 잠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잠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고 정리하는 역할도 한다”며 “깊은 잠을 유도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를 해소해야 한다. 만약 질 좋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기억장애를 비롯해 기분변화, 우울장애, 자살충동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면의 질에 대해 사람들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지언 수면연구학회장(대구가톨릭의대 신경과)은 “전 세계 약 1억명 이상이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를 겪지만 이들 대부분인 약 90%가 치료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국내에서도 수면장애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며 적극적인 치료를 당부했다.
윤인영 수면학회장(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도 “수면장애는 크게 불면, 기면, 하지불안증후군, 램수면행동장애, 수면무호흡증 5가지로 나뉜다”며 “모두 인지기능저하나 합병증, 일상생활 장애 등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서울대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는 성인의 수면장애 뿐 아니라 소아 코골이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코골이의 경우 편도선이 비대하거나 아데노이드, 알레르기비염, 물혹, 코뼈 휨, 비만 등의 원인으로 상기도가 막혔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얼굴형이나 치열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못하게 하고 집중력이나 활동력 저하 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3~4세때 성장의 60%가, 12세 전후로 90%가 완성된다”며 “빠른 진단과 아데노이드 절제술 등 적극적인 치료가 수면의 질을 높이고 성장과 건강한 생활, 신체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한편, 대한수면학회와 대한수면연구학회는 지난 15일 오후 서울역 부근 ‘서울로 7017’에서 ‘수면의 날 걷기(March for Sleep)’ 행사를 개최하고 건강한 수면을 위한 사회적 인식개선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는 수면질환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샘 해밍턴도 참석해 겅강한 수면의 중요성을 알렸다.
샘 해밍턴은 이날 걷기 행사에 참여해 “누구보다 수면건강에 대해 관심이 높은데, 실제로 페쇄성 수면무호흡증을 겪어 운동과 양압기 치료로 적극적으로 관리해왔다”며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건강한 수면의 중요성에 더욱 공감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