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71년 만의 재심

[친절한 쿡기자] 71년 만의 재심

71년 만의 재심

기사승인 2019-04-29 17:47:21

1948년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촉발된 이른바 ‘여순사건’ 재심 첫 재판이 29일 열렸습니다. 재심은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이날 오후 2시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당한 장모씨 등 3명의 유족이 낸 재심 사건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습니다. 장씨 등은 과거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에 대한 증거나 기록은 사실상 없습니다. 심지어 법원조차 판결문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사형이 선고되었는지 유족들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재심을 원한 유족들은 지난한 법정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보면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유족의 주장만으로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고했습니다. 2심도 마찬가지입니다. 1심의 재심 결정이 옳다고 판단한 재판부와 달리 검찰은 재항고를 결정했죠.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재심이 결정됐습니다.

사건 발생 71년, 재심 청구 8년 만에 시작된 재판입니다. 이날 재판부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 재판에 임하는 심경을 이야기했습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법원이 부족하게나마 그 책무 중 일부를 해야 한다. 현행법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통한의 세월을 보내온 유족의 한이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심을 한다고 해서 유린당했던 민간인 희생자들의 인권을 이제 와 보호할 수 없습니다. 죄 없이 끌려가야 했던 이들의 지난 세월을 보상할 수도 없죠. 유족과 재판부 그리고 이 재판을 바라보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과거 자행되었던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을 심판하고, 반란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는 것일 겁니다. 이렇게라도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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