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걸캅스' 모래처럼 버석대는 여성주의, 하지만 현실이기에

[쿡리뷰] '걸캅스' 모래처럼 버석대는 여성주의, 하지만 현실이기에

'걸캅스' 모래처럼 버석대는 여성주의, 하지만 현실이기에

기사승인 2019-05-03 00:00:00


미영(라미란)은 예전에는 이른바 ‘깃발 날렸던’ 여형사다. 남자들만 가능한 줄 알았던 강력범죄 체포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표창도 받았지만, 세월은 그녀를 전설로 놔두지 않았다. 사법고시에 매진만 하다 결국은 고시 폐지를 맞아 백수가 된 남편 지철(윤상현)과 아이를 홀로 먹여살리기 위해 안정적인 민원실 주무관으로 발령받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민원실에 권고사직 바람이 불며 간당간당한 상태가 됐다.

지혜(이성경)는 오빠 지철과 미영이 연애하기 전, 미영을 보고 여자도 형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경찰이 된 케이스다. 하지만 매번 과잉진압으로 욕을 먹고, 의욕이 앞서 제대로 된 성과는 따내지 못한다. 한 술 더 떠서, 백수인 오빠와 미영의 집에 같이 살며 한때 롤모델이었던 미영과는 앙숙이 다 된 상태. 엎친데 덮쳐 과잉진압으로 인터넷에 회자돼 결국 징계를 받아 미영이 있는 민원실로 발령받는다.

그때 한 대학생이 민원실에 머뭇거리며 찾아온다. 하지만 별다른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학생. 학생이 민원실에 놓고 간 휴대전화를 찾아주려던 미영은 학생이 도로 앞에서 트럭에 치이는 것을 목격한다. 사고인지 자살시도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 미영과 지혜는 사고를 당한 학생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직전인 정황을 포착한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민원실 옆자리 장미(최수영)의 도움을 받아 독자적인 사고 조사에 들어간다.

‘걸캅스’(감독 정다원)는 여태껏 관객이 봐왔던 버디물 영화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경찰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큰 상황들에는 도움이 안 되고, 앙숙인 두 사람은 한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의 조사는 큰 심각함이나 장애 없이 목표에 도달하고, 굴곡보다는 웃음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영화의 전개에서 두 사람을 방해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미영과 지혜의 불협화음과 사회적 시선이다. 

‘걸캅스’가 다른 버디물과 차별점으로 내세운 것은 주인공 두 사람이 겪는 장애물에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암묵적 차별이 들어가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장애물이 매끄럽게 섞여있지는 않다. 영화 속에서 장면마다 고개를 내미는 여성주의는 가끔 모래를 씹듯 버석거린다. 그러나 관객들 또한 현실에서 버석거리는 차별을 경험하고 있기에 ‘걸캅스’를 서툴다고 무시해버리기가 쉽지 않다.

주연을 맡은 라미란은 지난달 30일 서울 CGV용산점에서 열린 ‘걸캅스’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할말이 정말 많다”며 “부담스럽기도 하고, 떨리고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달게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라미란은“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페미니즘)의식이나 이런 걸 떠나서 오락영화이기에 가장 잘 할거라고 제작진도 믿어주신 것 같고, 나름 진지하게 연기했지만 (관객들은)즐거우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걸캅스’는 오는 9일 개봉한다.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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