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쓰나미’라는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승길(정승길)은 유명 영화 속 장면들을 모방하는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형사들에 관한 독립영화를 찍는 중이다. 영화는 뻔하지만 흥미로운, 한국 형사물의 전형적인 단계를 밟아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승길이 맡은 역할은 감이 날카로우면서도 서민적인 주인공 형사다.
영화를 찍는 현장은 자잘한 트러블의 연속이다. 배우 섭외에 열을 올리는 피디와 예술병에 걸린 감독, 정신이 반쯤 나간 조감독까지. 게다가 출연자가 부족해 툭하면 제작진들이 주요인물로 출연해야 하는 현장이다. 승길은 이 현장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로의 욕망은 대치되지만 날이 서지는 않는다. 영화라는 것은 협동 작업이므로. 그리고 승길은 힘겨운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가던 중, 사고를 친다. 영화 속에서는 형사 역할이지만, 스크린 바깥에서는 형사에게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형사가 희한하다. 자신이 맡은 역할과 닮았다. 감이 날카로운데 허술하고, 서민적인 아줌마 형사(김혜나)다. 자신이 영화 속을 사는지, 영화 속에서 연기 중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승길은 결국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영화광연속살인사건’(감독 박진성)은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슬픈 장면들의 연속이다. 영화를 배운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배운 놈’같지는 않은 감독의 허섭쓰레기같은 짓을 계속해 봐야 하는 스태프들의 고충, 그리고 ‘천만요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쪼’가 생겨버려 슬픈 유명 배우. 독립영화를 어떻게든 찍어내야 뭐라도 하나 이력서에 생기는 제작진들이 핑퐁핑퐁 주고받는 대사들은 슬프고 웃음이 난다.
영화 속의 영화가 주는 재미와 별개로 영화가 표방하는’전형적인 한국 경찰 영화’가 주는 메타적 잔재미도 가득하다. “형사가 똑똑해서 처음부터 범인을 잡으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겠냐”는 승길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3일 CGV 전주고사점에서 열린 ‘영화광연속살인사건’시사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박진성 감독은 “이야기 속 이야기가 있는 액자 구조를 좋아한다”며 “저희들 생활이나 일상이 영화 현장이며, 즉 영화를 준비하는 게 일상인 셈이라 이 영화 안의 이야기들은 저의 일상”이라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또한 유사한 실제 사건에서 착안해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는 것이 박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 속의 현실은 흑백으로 표현되며 영화 속 영화는 컬러로 표현된다. 이야기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선택된 테크닉이다. 박 감독은 “너무 오래된 테크닉이라 하지 말자는 반대가 있었지만, 저는 난폭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구분되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영화광연속살인사건’을 보는 관객들은 어느 정도는 영화에 관심이 있고, 그 구조를 아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정작 이 영화를 만든 박진성 감독의 속내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그리고 우스운 구조와 사람들 사이의 미묘하면서도 거대해질수는 없는 구질구질한 갈등까지.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절대적인 임금 체계 혹은 스태프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영화 제작은 스태프들의 호의 혹은 인적자원 활용에 필연적으로 기대게 되는 작업이다.
자연스레 감독들은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위해 스태프를 희생시킬 것인가, 혹은 예산을 희생시킬 것인가 고뇌하기 마련이다. 박 감독은 이에 관해 “저의 경우 상업영화 스태프도 많이 했다 보니 결국은 스태프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작업보다는 스태프의 복지와 환경을 우선한다는 것. 박 감독은 “연출로서 사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스태프들을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것이)잘 안 되더라”라며 “스태프들을 어떻게든 끌고 가서 나중에 사과하는 식으로 자기 작업을 우선한다 한들,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것 같다”고 감독으로서의 딜레마를 밝혔다.
'영화광연속살인사건'은 제 20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 초청됐다.
전주=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