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큰치킨이 뭐길래

[기자수첩] 통큰치킨이 뭐길래

기사승인 2019-05-11 09:17:37

대한민국의 치킨 역사는 통큰치킨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 2010년 5000원에 출시된 통큰치킨은 당시 고급화를 꾀하던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이단아로 등장해 큰 충격을 줬다. 이뿐 아니라 통큰치킨은 정치‧산업‧문화 등 사회 전반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권은 통큰치킨을 두고 다툼을 벌였고 대통령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산업계와 대중에 끼친 영향력도 상당했다. 

치킨 업계에 있어 2000년대 중반은 격변기였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불어난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각자의 생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비비큐와 교촌 등 기존의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파닭, 불닭, 간장, 마늘 등의 각종 조리법을 개발하며 체인의 고급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1만원 후반대의 치킨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던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다. 

실업과 취업난 등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 속에서 사람들은 “치킨 가격이 너무 올랐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을 내놓자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통큰’ 이라는 단어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청량감 마저 들게 했다. 이를 시작으로 '반값', '파격' 등의 행사도 줄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큰치킨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기업의 소상공인 영역 침범 논란이 일었고 정치 문제로까지 번지며 결국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도대체 통큰치킨이 뭐길래. 사실 통큰치킨에는 ‘중산층 감소’. ‘자영업 몰락’, ‘대형마트 쇠퇴’ 등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같은 문제점이 단지 ‘통큰치킨’이라는 음식물을 매개로 터져 나왔을 뿐이다. 씁쓸한 점은 이 ‘통큰치킨’ 현상은 9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8일, 할인 이벤트의 일환으로 잠시 부활했던 통큰치킨은 다시 모습을 감췄다. 롯데마트 측은 일일 판매는 어렵더라도 매월 일주일씩 이벤트성 상품으로 통큰치킨을 선보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협회가 이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불투명하게 됐다. 5000원의 가격은 정상적인 치킨 가격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프랜차이즈 협회 관계자의 말을 빌어보면, 5000원이라는 가격을 대중이 치킨의 정상가로 인식해 소상공인의 경영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긍 가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은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 납임금 등 여러 부담을 안고 있다. 분명 이들에게 통큰치킨은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한편으론 대형마트 역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7일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 등 주요 유통업계 가운데 대형마트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업계가 초저가 전략을 펼치면서도 역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과 온라인 쇼핑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대형마트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여러 복잡한 사회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통큰치킨은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소비자들이 통큰치킨에 우호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반발도 여전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입장에서는 자칫 ‘통큰치킨’을 인정하는 모양새라도 보이게 되면 다른 대형마트들의 '치킨 공습'이 더욱 가속화 할 것을 우려한다. 

'지나친 규제'냐 '지나친 확장'이냐는 현재 유통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다. 9년전 5000원 치킨이 가져왔던 갈등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도대체 통큰치킨이 뭐길래.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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