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태완 SNU청안과 망막클리닉 원장
“아침에 일어나니 눈앞에 검은 점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파리가 날아다니는 줄 알았어요. 제가 당이 잘 조절되는 편인데, 눈에 당뇨가 온 건가요?”
얼마 전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온 50대 초반 나이 여성 A씨의 하소연이다. 알고 보니 비문증(飛蚊症)을 의심하고 있었다. 휴대폰만 열어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세상이니 만큼 이미 많은 건강의료정보를 찾아보고 온 듯하다.
안약으로 산동(눈동자를 키우는)을 진행한 후 눈 밑 안저(眼底)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다행히 망막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A씨의 얘기대로 유리체(눈 속을 채우고 있는 젤리 형태의 투명한 조직) 안에 혼탁한 부유물이 보였다. 그다지 큰 형태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불편을 느낄 만하다고 여겨졌다. 지금의 나이에선 흔한 증상인데다가 큰 문제도 아니라고 일단 A씨를 안심시키고, 한 달 동안 경과를 다시 관찰해보기로 했다. 심하지 않은 비문증이 망막박리의 전구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임신 32주차의 30대 중반 나이의 여성 B씨가 왼쪽 눈의 시야 일부가 가려져 보인다는 이유로 필자를 찾아왔다. 1주 전부터 눈앞에서 날파리가 어른거리는 증상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바로 산동 후 안저(眼底)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왼쪽 눈 1시 방향 망막 주변부에 말발굽 모양의 망막 열공(찢김)과 함께 망막이 눈 속에서 뜯겨지는 증상, 망막박리가 관찰되었다. 전신마취 하에서 망막열공 부위를 실리콘 스펀지로 때워주는 ‘공막돌륭술’을 시행했다.
젤리 형태의 유리체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액체 형태로 바뀌어 간다. 열공(裂孔), 즉 망막 주변부 일부가 찢겨진 틈을 타고 액체 형태로 변한 유리체가 망막 아래쪽으로 파고들었을 때 생기는 게 망막박리증이다.
만약 B씨가1주 전 날파리 증상을 처음 경험하자마자 안과로 직행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증상이다. 망막박리는 망막열공으로부터 시작되고, 망막열공 상태에선 이른바 ‘레이저광응고술’로, 비교적 간단히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망막박리 단계로 발전하면 더 큰 수술이 필요하고 그만큼 실명위험도 높아지게 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비문증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의 하나로 나타난다. 주변부 망막 열공이나 유리체 혈흔이 나타나는 경우만 아니라면, A씨처럼 당분간 별다른 치료도 없이 그냥 경과를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비문증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다. 눈 속에서 유리체 변성이 진행되고 곧 망막열공 및 망막박리가 올 수도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검사 상 주변부 망막열공 등 이상이 안 보여도 약 한 달 간격으로 시차를 두고 다시 검사를 해보는 것이 안전하다.
나아가 날파리 숫자가 점점 많아지거나 이전에 없던 눈 번쩍임, 시야 가림 등과 같은 이상 증상이 새로 나타나면 즉시 망막 전문 안과 의사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적절한 처방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