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신과는 지원자의 성적이 낮아도 남자를 뽑습니다”, “과장님이 남자지원자를 선호하고 비슷한 스펙의 경우, 남자만 뽑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결혼 및 임신·출산에 대한 압박과 임신·출산을 하지 않을 것을 강요”, “남자라서 언어폭력을 당함”, “우리 병원에 여자 교수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는 교수가 있었음”, “셋째는 안 낳을 거지라는 질문”, “같은 경력이지만 남자의 연봉이 높음”.
위의 사례는 한국여자의사회의 ‘의료계의 성평등 현황 설문조사’에 응답한 남녀 의사들의 성차별 경험 중 일부다. ‘미투’를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우리사회의 성평등 의제는 각계에서 활발히 논의 중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에 기반을 둔 불평등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의료계를 ‘군대’에 빗댄다.
여성들은 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적 성차별에 노출된다. 앞선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녀 의사 1170명의 성차별 경험은 ‘전공의 지원’ 단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졌다. 그 다음은 ▲취직 ▲교수임용 ▲승진 ▲의사결정 ▲전임의 지원 ▲연봉협상 순이었다.
설문을 진행한 신현영 한양대 명지병원 교수에 따르면,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남성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설문 결과는 전공의 선발과정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원하는 전공과에 지원을 할 수 없는 원천적 배제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이 높거나 좋아도 탈락하며, 낮은 성적의 남성지원자들이 합격하고 있는 불합리한 결과를 경험하고 있었다.
왜 ‘전공의 지원’ 과정에서 성차별이 가장 빈번할까?
신 교수는 여성 전공의들이 남성에 비해 힘든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으로 분석했다. 특히 결혼, 임신, 출산 등 생물학적인 여성 고유의 역할과 업무를 연결, 차별과 배제를 합리화하고 있다는 게 한국여자의사회의 결론이다. 이러한 배제는 여성의 의료계 진입을 차단하고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결혼 예정이었기 때문에 (과에) 지원을 할 수 없었어요”, “출산 휴가를 언급하면서 여자는 뽑을 수 없는 구조라고 했어요”. (전공의 지원과정에서 당한 성차별 경험 사례 中)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성차별은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고용상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대표적인 법이다. 법은 성별, 혼인 또는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을 이유로 하는 모집·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등, 교육·배치·승진, 정년·퇴직·해고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고용상 성차별금지 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주를 형사처벌 하는 벌칙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병원 등지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을 당했다면 법 위반 행위를 검찰이나 지방노동행정기관에 고소고발해 형사소추를 구할 수 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행위와 성희롱에 관한 진정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합의권고, 조정, 시정권고, 차별의 제도개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밖에도 고용상의 성차별로 인한 각종 불이익에 대해 손해배상소송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의료계의 도제적·수직적 관계나 폐쇄성을 고려하면, 법적 절차를 통한 해결이 녹록치만은 않다.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연대’가 새로운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 원장은 “다른 세대, 다른 분야 여성들과의 연대를 통해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며 “의료계와 페미니즘과의 만남을 통해 의료계로 맥락화 된 성평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