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오명 중 하나는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 1위, 사망률 1위 국가라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결핵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회는 결핵의 위험성과 예방법 등을 연일 전파한다.
문제는 정부가 2013년부터 결핵퇴치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한 해에 1800여명이 숨지고 그보다 많은 이들이 결핵에 감염된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8일 ‘결핵예방강화대책’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결핵을 퇴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핵 퇴치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방안들은 모두 필요한 조치지만, 경각심을 고취시키려는 등의 목적 때문에 결핵의 위험성을 크게 강조하다보니 잠복결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결핵은 기본적으로 전염병이다. 하지만 잠복결핵은 결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할 수 있는 상태일 뿐”이라며 “(국민들에게) 잘못 알리면 마치 (잠복결핵도) 꼭 치료해야하고, 전염되는 것처럼 인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우려는 결핵환자가 발생했다거나, 잠복결핵을 앓고 있는 의료진이 근무한다는 소문이 퍼진 일부 지역 의료기관으로 환자들이 발길을 끊는 등 현실에서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결핵에 대한 두려움과 비교해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동의했다. 최근 의료기관에서의 결핵전파 관련 소란을 겪었던 부산의 한 보건소 감염관리 담당자도 “잠복결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결핵에 걸리는 환자가 매년 줄어들고는 있지만 연간 3만 가량의 환자가 생기고, 잠복결핵환자만 전 국민의 3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되는 상황에서 잠복결핵은 정말 위험하지 않은 것일까.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호흡기내과 한창훈 교수는 “잠복결핵으로 진단받았다고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전염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격리하거나 우려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잠복결핵 진단을 받은 경우라도 결핵균을 가지고 있었거나 가지고 있는 이들일 뿐이며 활동성이 없기에 대부분 결핵으로 진행되거나 주변으로 전염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통계적으로 전체 잠복결핵 진단자 중 10%정도만 결핵으로 발전한다고 보고되고 있다”며 “진단결과가 양성이라고 해도 결핵균이 현재 들어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릴 때 결핵을 앓았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 사람들까지 치료를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복결핵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굳이 치료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HIV(에이즈바이러스) 보균자나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 면역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한 사람, 투석 등을 받으며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족 중에 결핵 감염자가 발생해도 모두가 감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엔 이미 균을 가진 이들이 많고, 만원 버스나 지하철 등 많은 사람과의 접촉이 이뤄지는 환경에 자주 노출될 수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만큼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는 말도 남겼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결핵균은 햇빛을 받으면 잘 죽고, 환기를 잘하면 전염으로부터 조금은 안심할 수 있다”면서 “PC방에 자주 출입하거나 과도한 다이어트 등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질 경우 결핵에 걸릴 수 있다. 무엇보다 결핵을 가진 이들이 열심히 관리하고 전염에 신경써야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국내에서 발생하는 결핵의 많은 수는 폐결핵으로, 증상 또한 폐렴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기침이 3주 이상 지속되거나 미열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해보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객담(가래)검사나 피검사, CT나 핵산검사로도 알아볼 수 있다.
잠복결핵의 치료는 보통 9개월간 치료제를 복용해야하며 일부 간독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등 많은 학생들과 생활하는 선생이나 병원 근무자 등은 주기적인 검사와 적극적인 진단, 치료하도록 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