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의 변화를 설명하는 기준 중 하나는 ‘법과 제도’다. 정책방향이 정해져 법이 바뀌고 제도가 달라지면 의료기관들은 이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의 변화가 급진적이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다. 때론 변화가 너무 자주 요구되거나 과도할 때도 문제다. 그리고 지금, 의료기관들이 변화에 지쳐 나가떨어지고 있다.
그 시작은 2015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중후군)’ 부터였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큰 변화를 야기했다. 그간 ‘환자편의’에 방점을 찍고 장비를 사들이거나 번듯한 건물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려 노력했던 병원들이 ‘환자안전’을 고민하게 됐고, 끝나지 않는 공사가 시작됐다.
실제 정부는 메르스 발생 직후 병원 내 감염(의료관련감염) 확산을 막고 환자의 안전을 확보해야한다며 법과 제도를 개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문객 및 보호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병문안 문화개선 캠페인과 병동 출입차단 방호문(스크린도어) 설치다. 당장 의료기관들은 공사에 들어갔다.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안네데스크를 만들고 면회 통제요원을 세웠다. 병동 출입구에는 스크린도어와 바코드 인식기도 설치했다.
가장 큰 변화는 병실이다. 병원들은 기준 병상이 6인실에서 4인실로 바뀜에 따라 병실 간 벽을 허물고, 벽을 허물 수 없는 곳은 침대를 빼는 등 대대적인 공간 재배치를 해야 했다. 일부는 2, 3인실보다 넓은 개인공간을 둔 4인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 뿐이 아니다. 병상 간 거리도 기침에 의한 침이 닿지 않도록 1~1.5m 떨어뜨렸다. 병상과 병상을 구분하는 가림막도 다시 설치해야했고, 병상 수에 맞춘 주차공간도 법에 의거해 개선해야했다.
병원의 구조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공사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스프링쿨러 설치도 이뤄졌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 의료기관 화재가 여타 기관보다 생명의 위협이 더욱 크다는 점을 이유로 정부가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이미 법이 시행돼 다들 자비를 들여 천장을 뜯거나 간이 스프링클러를 속속 설치했다. 일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상가 등에 위치한 중소병원들도 강화된 기준에 따라 건물주와 협상에 나서거나 공사에 들어갔다. 기타 제연설비, 방염용품 구비로 분주함도 보였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다.
스프링클러 설치를 끝내고 한 숨 돌리나 했던 의료기관들은 또 다시 천장을 뜯거나 대대적인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CCTV 설치에 의료기관 내 공기 질 관리기준 강화로 인한 공조시설의 개보수 혹은 공기정화시설을 갖춰야해서다.
이에 지방 중소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분명 환자 안전과 진료환경 개선을 위해 따라야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보장성 강화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가중에 각종 시설 개보수까지 이어지니 빚을 져서 공사를 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수도권 소재 중소병원의 B원장은 “의료기관의 유동인구가 얼만데 공기 질 관리를 의료기관 몫으로만 돌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까지 모두 걸러내라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수익사업조차 제한돼있다. 여기에 저수가까지 장기간 이어지며 사실상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은 누더기가 되고 환자는 줄어들고, 이젠 정말 지친다”면서 “다들 (충격에) 넋 놓고 있다. 일부는 차라리 벌금을 물고 말겠다고 까지 한다. 이게 정부가 말하는 규제완화, 더불어 사는 사회냐”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지역병원협의회, 대한중소병원협회 등 의료계 단체들은 일제히 ‘탁상행정’, ‘행정 편의적 정책’이라며 정부정책에 날을 세웠다.
의사협회는 “기본적으로 정부는 국민이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단순히 의료기관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지나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중소병원협회 등도 현장의 불만과 현실을 정리해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나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었다. 다만, 의료기관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점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일부나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재정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재정지원은 규정이 없어 어려울 수 있다”고 귀띔해 지원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에 의료기관의 불만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갈등해소를 위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