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한 운전자 차량에 치여 사망한 고(故) 윤창호씨.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 청년의 죽음을 망각한 듯 합니다.
‘제1 윤창호법’(음주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음주운전 건수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적발 건수는 다시 증가해 법 시행 전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윤창호법’이 시행된 지난해 12월 음주운전 단속 건수는 1만714건으로 시행 전달인 11월(1만2801건)보다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지난 1월 8644건, 2월 8412건으로 줄다가 3월 1만320건, 4월 1만1069건, 지난달 1만218건으로 늘었습니다.
음주운전 단속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를 현행 0.05%에서 0.03%로 강화한 ‘제2 윤창호법’은 오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주운전을 단속·처벌하는 당사자인 사법기관 관계자들의 음주운전이 잇따라 적발되며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10일 광주 북부경찰서는 음주운전 혐의로 지구대 소속 A순경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지난달에는 현직 경찰 간부가 면허 취소 수준의 상태로 음주운전 하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죠. 이뿐만인가요. 지난 1월에는 현직 검사가, 지난해 11월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습니다.
결국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최소 형량을 1년 이상에서 ‘3년 이상 징역형’으로 높인 ‘제1 윤창호법’은 우리 사회에 충격 요법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입니다. ‘윤창호법’ 발의를 제안한 고 윤씨 친구들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최소 형량을 살인죄와 같은 ‘5년 이상 징역형’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형량이 하향 조정되자 고 윤씨 친구들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우리나라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최소 형량이 5년에서 3년으로 낮아지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음주운전 처벌 수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 동시에 나옵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살인 혐의를 적용해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음주 운전자를 3년 면허 정지,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고 동승자, 술 제공자, 차량 제공자까지 처벌합니다. 노르웨이는 2회 이상 적발되면 면허를 평생 박탈한다고 합니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차량에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기를 장착, 음주를 하지 않은 경우에만 시동이 걸리도록 장치를 설치하자는 법안도 국회에 나왔습니다. 이른바 ‘시동 잠금 장치법’인데, 이미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교통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돼 운영 중인 제도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음주운전을 ‘실수’로 가벼이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안일한 인식은 높은 재범률로 이어집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음주운전 재범률은 44.7%에 달했습니다. 이는 중독성 강한 마약 범죄 재범률(32.3%) 보다도 높습니다. 음주운전 차량은 그 누구라도 덮칠 수 있습니다. 제 2의, 제 3의 윤창호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근본적 해결책을 다 같이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